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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05]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이 『열성왕비세보』는 1757 이후에 작성되었으며, 1805년(순조 5) 이후에 보완된 것으로 종부시에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모두 10권 4책으로 열성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까지의 직계를 밝혀놓았는데, 부모에 대한 碑誌文이나 行狀, 家傳 등이 존재하면 함께 수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까지도 수록하고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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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열성왕비세보는 1757년 이후에 작성되었으며, 1805년(순조 5) 이후에 보완된 것이다. 종부시에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열성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내용 및 특징] 1.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시기이 열성왕비세보는 조선시대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宗親府에서 편찬한 系譜이다. 간행연대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수록된 인물의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은 복잡한 양상을 보이고 있어 편찬시기를 추정하는데 어려움을 주고 있다. 즉, 목록의 마지막에는 ‘今 王妃貞聖王后徐氏 籍達城’이라고 되어 있어 처음 편찬이 시작된 것은 정성왕후 몰년인 1757년(영조 33)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본문 권10에는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까지 기록되어 있다. 이것을 근거로 본다면 정순왕후의 몰년인 1805년(순조 5) 이후에 보완되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 열성왕비세보는 1757년 이후 영조 재위시에 편찬되었으며, 그 후 1805년 이후에 보완되었다고 볼 수 있다. 2. 『열성왕비세보』의 체제 및 내용 모두 10권 4책으로 체제는 1권 앞에 목록과 범례가 있으며, 권1부터 목조비에서 10권 영종비까지 열성왕비를 기록하였다. 다른 열성왕비세보에서는 마지막 권에 당대의 왕후의 세보를 수록하였기 때문에 권수제가 ‘왕비세보’로 되어 있으나, 여기에서는 후대에 보완되었기 때문에 모두 ‘열성왕비세보’라고 하였다. 또한 다른 열성왕비세보에서는 선대왕비가 생존해 있으면 대왕대비로 호칭하고 있으나, 여기에서는 ‘정순왕후’라는 시호를 사용하고 있어 정순왕후의 몰년인 1805년 이후에 보완된 것임을 확실하게 한다. 편찬체제는 먼저 각 왕비 세보의 첫 행에는 “某諡號大王妃某諡號王后”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으며, 다음 행부터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왕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시조까지 기록하였다. 그러나 각 왕후의 가문에 따라 상대의 경우 정확한 계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확인되는 계대까지만 기록하였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왕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왕비와의 관계는 父, 母, 前母, 生母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父와 母의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수록된 비지문은 다음과 같다. 卷之一 : 太宗妃(父 閔霽(1339∼1408)의 墓誌銘), 世宗妃(父 沈溫(1375∼1418)의 家傳) 卷之二 : 世祖妃(父 尹璠(1384∼1448)의 家傳과 母 興寧府夫人李氏 墓表陰記), 德宗妃(父 韓確(1403∼1456)의 神道碑銘, 母 南陽府夫人洪氏 神道碑銘) 卷之三 : 睿宗妃(父 韓明澮(1415∼1487)의 神道碑銘) 睿宗繼妃(父 韓伯倫(1427∼1474)의 神道碑銘), 成宗繼妃(父 尹壕(1424∼1496)의 墓碑銘과 母 延安府夫人田氏 墓表陰記) 卷之四 : 中宗妃(父 尹汝弼(1466∼1555)의 家狀), 仁宗妃(父 朴墉(1468∼1524)의 墓碑銘), 明宗妃(父 沈鋼(1514∼1567)의 神道碑銘) 卷之五 : 宣祖妃(父 朴應順(1526∼1580)의 神道碑銘), 宣祖繼妃(父 金悌男(1562∼1613)의 墓誌銘), 元宗妃(父 具思孟(1531∼1604)의 神道碑銘) 卷之六 : 仁祖妃(父 韓浚謙(1557∼1627)의 神道碑銘), 仁祖繼妃(父 趙昌遠(1583∼1646)의 神道碑銘과 完山府夫人崔氏 行狀) 卷之七 : 孝宗妃(父 張維(1587∼1638)의 神道碑銘) 卷之八 : 顯宗妃(父 金佑明(1619∼1675)의 神道碑銘), 肅宗妃(父 金萬基(1633∼1687)의 神道碑銘) 卷之九 : 肅宗繼妃(父 閔維重(1630∼1687)의 神道碑銘, 前母 海豊府夫人李氏墓誌, 母 恩城府夫人宋氏墓誌, 後母 豊昌府夫人趙氏 墓表) 卷之十 : 英祖繼妃(5代祖 金弘郁(1602∼1654) 神道碑銘) [자료적 가치] 이 『열성왕비세보』는 열성왕비의 가문과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된 보첩으로,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연원을 밝히고 있으며, 부모를 중심으로 각각에 대한 碑誌文을 수집하여 부록하고 있다. 특히 父뿐만이 아니라 母의 비지문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에 대한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사료적 가치도 대단히 크다. 성씨와 본관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짧기는 하지만 보학연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어 종합적인 왕비가문 연구의 기초자료로서의 의의가 매우 크다. 이 『열성왕비세보』는 왕대에 따라 변화되는 양상을 살필 수 있으며, 편찬의 의미와 방향을 파악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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