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성왕비세보』(K2-1695)는 1801~1832년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열성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모두 5冊 11卷으로 편차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것은 마지막 권인 제5책 권11만이 남아있다.
원자료제목
표제 |
列聖王妃世譜 |
내제 |
列聖王妃世譜 |
[내용 및 특징] 1.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시기 이 『열성왕비세보』(K2-1695)는 모두 5책 11권으로 편찬된 것으로 보이지만, 현재는 제5책 권11이 수록되어 있는 1책만 남아있다. 간행연대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수록된 인물의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 ‘今上王妃明敬殿下’라고 내가 되어 있는 부분이 있다. 이는 순조비인 순원왕후(1789∼1857)를 지칭한다. 그런데 순원왕후의 존호가 ‘明敬’으로 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이 존호는 1827년(순조 27) 9월 9일에 올린 것이기 때문에 편찬시기의 상한선은 1827년이 된다. 또한 순원왕후의 아버지인 金祖淳(1765∼1832)에 대한 기록에서 生年만이 보이기 때문에 김조순의 몰년인 1832년(순조 32)이 편찬시기의 하한선이 된다. 따라서 이 열성왕비세보의 편찬시기는 1827년에서 1832년 시이에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1827년 왕후의 존호를 ‘明敬’으로 올리고 개수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열성왕비세보』의 체제 및 내용 현재 남아있는 제5책 권11에는 ‘眞宗大王妃徽貞賢淑孝純王后’부터 순조비인 ‘今上王妃明敬殿下’까지 수록되어 있다. 편찬체제는 먼저 각 왕비 세보의 첫 행에는 “某諡號大王妃某諡號王后”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으며, 다음 행부터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왕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시조까지 기록하였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왕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왕비와의 관계는 父, 母, 前母, 生母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수록된 비지문은 다음과 같다. 卷之十一 : 正宗妃(父 金時黙(1722∼1772)의 墓表), 今上王妃明敬殿下(高祖父 金濟謙(1680∼1722)의 墓表, 5代祖 金昌集(1648∼1722)의 墓誌銘, 6代祖 金壽恒(1629∼1689)의 墓誌銘, 8代祖 金尙憲(1570∼1652)의 墓誌銘)
[자료적 가치] 이 『열성왕비세보』는 1책만 남아있는 잔본이지만, 앞서 편찬된 열성왕비세보와 다른 면을 보이고 있다. 즉, 앞서 편찬된 것에서는 수록된 비지문이 대부분 왕비의 아버지와 어머니 것이었지만, 이 열성왕비세보에서는 비록 금상왕비에 한정되기는 하지만, 고조부와 5대조부의 묘지가 수록되어 있다. 이러한 변화에서 우리는 열성왕비의 조상들 중에서 비지문이 있으면 모두 수록한 고종 때 편찬된 『열성왕비세보』(K2-1696)의 수록 원칙이 여기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조선후기 선원 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 원창애
/ 『藏書閣』 1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조선후기 『列聖王妃世譜』의 편찬 과정과 내용」
/ 원창애
/ 『列聖王妃世譜』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선원록≫의 편찬과 그 내용」
/ 정재훈
/ 『부산사학』 30, 1990
- 「조선 후기 왕실의 구성과 선원록-1681년(숙종7) ‘선원계보기략’의 편찬을 중심으로」
/ 홍순민
/ 『한국문화』11,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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