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1681]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

UCIG002+JSK+KSM-WJ.1681.1111-20120515.K21693
분류
형식분류 고서-족보
내용분류 사회-가족/친족-족보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세보 간행
단체/기관명 종부시
작성지역
지역 한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연도 1681
월일 00/00 (음)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38.3, 가로 : 24.3
판본 필사본(筆寫本)
장정 선장(線裝)
수량 8卷 3冊
판식 사본(寫本), 四周雙邊, 半郭 26.9 × 18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註雙行, 無魚尾
재질 저지(楮紙)
표기문자 한자
비고
[청구기호]

K2-1693

[마이크로필름]

MF35-6631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1681]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

이 『열성왕비세보』는 1681년(숙종 7) 종부시에서 처음으로 간행한 것으로 총8권3책으로 되어 있다.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한 편찬한 것으로, 열성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까지의 직계를 밝혀놓았는데,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碑誌文이나 行狀, 家傳 등이 존재하면 모두 함께 수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까지도 수록하고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관련문헌
『돈녕보첩(敦寧譜牒)』「왕후편」『皇后世譜』
집필자
어강석

이 열성왕비세보는 1681년 종부시에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열성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원자료제목
표제 王妃世譜
내제 列聖王妃世譜

[내용 및 특징]
1.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시기
이 열성왕비세보는 1681년(숙종 7)에 『璿源錄』을 개수하고 아울러 『국조어첩』과 함께 작성된 것이다. 조선시대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한 것으로 宗簿寺에서 편찬한 系譜이다. 『선원록교정청의궤』(규-14005)에는 조선 전기에 『왕비세보』를 찬진하였다는 설이 있다고 하였지만 확인되지 않으며, 현재로서는 본 『열성왕비세보』가 첫 번째로 작성된 것이다.

2. 『열성왕비세보』의 체제 및 내용
모두 8권 3책으로 체제는 1권 앞에 목록과 범례가 있으며, 권1부터 목조비에서 권7 효종대왕비까지 열성왕비를 기록하였으며, 권8에는 숙종비까지 왕비의 직계를 수록하고 있다. 권1의 정종대왕의 호칭은 목록에서 恭靖大王이라고 하였지만 본문에서는 定宗大王이라고 하였다.
편찬체제는 먼저 각 왕비 세보의 첫 행에는 “某諡號大王妃某諡號王后”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으며, 다음 행부터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왕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시조까지 기록하였다. 그러나 각 왕후의 가문에 따라 상대의 경우 정확한 계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확인되는 계대까지만 기록하였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왕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왕비와의 관계는 父, 母, 前母, 生母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父와 母의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수록된 비지문은 다음과 같다.

卷之一 : 太宗妃(父 閔霽(1339∼1408)의 墓誌銘), 世宗妃(父 沈溫(1375∼1418)의 家傳)
卷之二 : 世祖妃(父 尹璠(1384∼1448)의 家傳과 母 興寧府夫人李氏 墓表陰記), 德宗妃(父 韓確(1403∼1456)의 神道碑銘, 母 南陽府夫人洪氏 神道碑銘)
卷之三 : 睿宗妃(父 韓明澮(1415∼1487)의 神道碑銘) 睿宗繼妃(父 韓伯倫(1427∼1474)의 神道碑銘), 成宗繼妃(父 尹壕(1424∼1496)의 墓碑銘과 母 延安府夫人田氏 墓表陰記)
卷之四 : 中宗妃(父 尹汝弼(1466∼1555)의 家狀), 仁宗妃(父 朴墉(1468∼1524)의 墓碑銘), 明宗妃(父 沈鋼(1514∼1567)의 神道碑銘)
卷之五 : 宣祖妃(父 朴應順(1526∼1580)의 神道碑銘), 宣祖繼妃(父 金悌男(1562∼1613)의 墓誌銘), 元宗妃(父 具思孟(1531∼1604)의 神道碑銘)
卷之六 : 仁祖妃(父 韓浚謙(1557∼1627)의 神道碑銘), 仁祖繼妃(父 趙昌遠(1583∼1646)의 神道碑銘과 完山府夫人崔氏 行狀), 孝宗妃(父 張維(1587∼1638)의 神道碑銘)
[자료적 가치]
이 『열성왕비세보』는 1681년(숙종 7)에 처음으로 작성된 것으로 이후 간행된 열성왕비세보의 기준이 되고 있다. 『열성왕비세보』는 열성왕비의 가문과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된 보첩으로,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연원을 밝히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碑誌文을 수집하여 부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의 비지문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에 대한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사료적 가치도 대단히 크다. 성씨와 본관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짧기는 하지만 보학연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왕비 직계들에 대한 신도비명, 묘지명, 묘갈명, 묘표, 행장, 가전 등을 총망라하고 있어 종합적인 왕비가문 연구의 기초자료로서의 의의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 「조선후기 선원 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 원창애 / 『藏書閣』 1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조선후기 『列聖王妃世譜』의 편찬 과정과 내용」 / 원창애 / 『列聖王妃世譜』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선원록≫의 편찬과 그 내용」 / 정재훈 / 『부산사학』 30, 1990
  • 「조선 후기 왕실의 구성과 선원록-1681년(숙종7) ‘선원계보기략’의 편찬을 중심으로」 / 홍순민 / 『한국문화』11, 1990
집필자
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