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1863]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

UCIG002+JSK+KSM-WJ.1863.1111-20120515.K21697
분류
형식분류 고서-족보
내용분류 사회-가족/친족-족보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세보 간행
단체/기관명 종친부
작성지역
지역 한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연도 1863
월일 00/00 (음)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37, 가로 : 24.9
판본 필사본(筆寫本)
장정 선장(線裝)
수량 2冊(6책중 제5책, 제6책)
판식 四周雙邊, 半郭 27 × 18.5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無魚尾
재질 저지(楮紙)
표기문자 한자
비고
[청구기호]

K2-1697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1863]열성왕비세보(列聖王妃世譜)

이 『열성왕비세보』는 1863년 11월 27일부터 1865년 11월 4일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고종이 왕위에 즉위하자 헌종의 계비와 철종비가 왕대비와 대비로 처우가 변화된 것을 반영하기 위해 편찬한 것이다.
모두 11권 6책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5책과 6책만 전하고 있다. 卷之十一 제5책에는 진종비 효순왕후부터 헌종비 효현왕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제6책에는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부터 철종비 철인왕후의 6대조까지 기록되어 있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혼인한 때는 1866년(고종 3) 3월 20일이기 때문에 이 『열성왕비세보』가 편찬될 때는 왕비가 없었다. 그래서 철인왕후까지 수록된 것이다.
왕비의 부모로부터 시조까지의 직계를 밝혀놓았는데,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碑誌文이나 行狀, 家傳 등이 존재하면 모두 함께 수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까지도 수록하고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의식을 파악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관련문헌
『돈녕보첩(敦寧譜牒)』「왕후편」『皇后世譜』
집필자
어강석

이 『열성왕비세보』는 1863년 11월 27일부터 1865년 11월 4일 사이에 편찬된 것으로, 고종이 왕위에 즉위하자 헌종의 계비와 철종비가 왕대비와 대비로 처우가 변화된 것을 반영하기 위해 편찬한 것이다.


원자료제목
표제 列聖王妃世譜
내제 列聖王妃世譜

[내용 및 특징]
1.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시기
열성왕비세보는 조선시대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宗親府에서 편찬한 系譜이다. 간행연대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수록된 인물의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 철종비인 철인왕후(1837~1878)는 ‘明純大妃’로 기록하고 있으며, 헌종의 계비는 ‘明憲淑敬睿仁正穆王大妃’로 기록하고 있다. 헌종의 계비인 효정왕후와 철종비 철인왕후는 1864년 고종이 즉위하면서 왕대비와 대비가 되었다. 그리고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의 존호 중에 마지막으로 기록한 ‘正穆’은 1863년(철종 14) 11월 27일이다. 여기에 효정왕후의 존호가 더해진 것은 ‘弘聖’으로 1865년(고종 2) 11월 4일이다. 따라서 이 『열성왕비세보』는 고종이 왕위에 즉위하면서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와 철종비 철인왕후의 처우가 왕대비와 대비로 변한 것을 반영하기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즉 이 『열성왕비세보』는 1863년 11월 27일부터 1865년 11월 4일 사이에 편찬된 것이다.

2. 『열성왕비세보』의 체제 및 내용
모두 11권 6책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5책과 6책만 전하고 있다. 卷之十一 제5책에는 진종비 효순왕후부터 헌종비 효현왕후까지 기록되어 있으며, 제6책에는 헌종의 계비 효정왕후부터 철종비 철인왕후의 6대조까지 기록되어 있다. 고종이 명성황후와 혼인한 때는 1866년(고종 3) 3월 20일이기 때문에 이 『열성왕비세보』가 편찬될 때는 왕비가 없었다. 그래서 철인왕후까지 수록된 것이다.
편찬체제는 다른 열성왕비세보와 같이 먼저 각 왕비 세보의 첫 행에는 “某諡號大王妃某諡號王后”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으며, 다음 행부터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왕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시조까지 기록하였다. 그러나 각 왕후의 가문에 따라 상대의 경우 정확한 계대를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는데, 이럴 때는 확인되는 계대까지만 기록하였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왕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왕비와의 관계는 父, 母, 前母, 生母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父와 母의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자료적 가치]
『열성왕비세보』는 열성왕비의 가문과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된 보첩으로,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연원을 밝히고 있으며, 각각의 인물들에 대한 碑誌文을 수집하여 부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의 비지문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에 대한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성씨와 본관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짧기는 하지만 보학연구에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후기 선원 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 원창애 / 『藏書閣』 1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조선후기 『列聖王妃世譜』의 편찬 과정과 내용」 / 원창애 / 『列聖王妃世譜』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선원록≫의 편찬과 그 내용」 / 정재훈 / 『부산사학』 30, 1990
  • 「조선 후기 왕실의 구성과 선원록-1681년(숙종7) ‘선원계보기략’의 편찬을 중심으로」 / 홍순민 / 『한국문화』11, 1990
집필자
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