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1843]왕비세보(王妃世譜)

UCIG002+JSK+KSM-WJ.1843.1111-20120515.K21702
분류
형식분류 고서-족보
내용분류 사회-가족/친족-족보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세보 간행
단체/기관명 종친부
작성지역
지역 한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연도 1843
월일 00/00 (음)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37.5, 가로 : 25
판본 필사본(筆寫本)
장정 포배장(包背裝)
수량 1冊(제5책)
판식 四周雙邊, 半郭 26.7 × 18.5cm, 烏絲欄, 半葉 10行 20字
재질 저지(楮紙)
표기문자 한자
비고
[청구기호]

K2-1702

[마이크로필름]

MF35-4818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1843]왕비세보(王妃世譜)

이 왕비세보는 1843~1847년 사이에 종친부에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전체 5책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제5책만 남아있다.
그러나 내용을 보면 세 명의 왕후가 수록되어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대왕대비로, 한 명은 왕대비로 생존해 있으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남편인 왕은 아직 재위해 있는 상태에서 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난 상황이다. 이처럼 특별한 경우의 세 명의 왕후가 수록되어 있어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형태를 비교·연구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관련문헌
『돈녕보첩(敦寧譜牒)』「왕후편」『皇后世譜』
집필자
어강석

이 왕비세보는 1843~1847년 사이에 종친부에서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왕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전체 5책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제5책만 남아있다.


원자료제목
표제 王妃世譜

[내용 및 특징]
1. 『왕비세보』의 편찬 시기
왕비세보는 조선시대 왕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宗親府에서 편찬한 系譜이다. 간행연대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수록된 인물의 기록 내용을 살펴보면 대강을 짐작할 수 있다. 그중에서 헌종의 비에 대한 기록이 ‘孝顯王后’라고 되어 있어 효현왕후 김씨가 죽은 1843년(헌종 9) 8월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순조비인 순원왕후에 대하여 ‘純宗大王妃明敬文仁光聖大王大妃殿下’로 표기하고 있다. 순원왕후의 존호 중에서 ‘光聖’이 올려진 것은 1841년(헌종 7) 1월이며, 다음의 존호인 ‘隆禧’가 올려진 것은 1847년(헌종 13) 11월의 일이다. 따라서 이 왕비세보는 1843년 8월 이후부터 1847년 11월 이전에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2. 『열성왕비세보』의 체제 및 내용
모두 5책으로 편찬된 것으로 현재는 마지막 제5책만이 남아있다. 책등의 위쪽에 ‘全羅道’라고 쓰여있는데, 그 의미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수록된 인물은 순조의 비인 순원왕후, 익종비 신정왕후, 헌종비 효현왕후이다.
편찬체제는 각 왕비 세보의 첫 행에는 “某諡號大王妃某尊號大王大妃殿下”, 또는 “某諡號大王妃某尊號王大妃殿下”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다. 그러나 효현왕후의 경우에는 아직 헌종이 재위에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孝顯王后’라고만 되어있다. 다음 행부터 왕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왕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시조까지 기록하였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왕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왕비와의 관계는 父, 母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父와 母의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또한 국구가 아닌 선대의 인물이라도 碑誌文이 있으면 모두 찾아서 수록하였다.

수록된 비지문은 다음과 같다.
純祖妃(高祖 金濟謙(1680∼1722)의 墓表, 5代祖 金昌集(1648∼1722)의 墓誌銘, 6代祖 金壽恒(1629∼1689)의 墓誌銘, 8代祖 金尙憲(1570∼1652)의 墓誌銘), 翼宗妃(曾祖 趙曮(1719∼1777)의 墓表, 高祖 趙尙絅(1681∼1746)의 神道碑銘), 憲宗妃(曾祖 金履素의 墓表, 高祖 金坦行(1714∼1774)의 墓表)
[자료적 가치]
이 『왕비세보』는 완질본이 아니라 5책 중 제5책만이 남아있는 것이어서 전체의 내용을 일별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제5책에 수록된 내용을 보면 세 명의 왕후 중에서 한 명은 대왕대비로, 한 명은 왕대비로 생존해 있으며, 그리고 나머지 한 명은 남편인 왕은 아직 재위해 있는 상태에서 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난 상황이다. 이처럼 특별한 경우의 세 명의 왕후가 수록되어 있어 열성왕비세보의 편찬 형태를 비교·연구하는 데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참고문헌
  • 「조선후기 선원 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 원창애 / 『藏書閣』 1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조선후기 『列聖王妃世譜』의 편찬 과정과 내용」 / 원창애 / 『列聖王妃世譜』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선원록≫의 편찬과 그 내용」 / 정재훈 / 『부산사학』 30, 1990
  • 「조선 후기 왕실의 구성과 선원록-1681년(숙종7) ‘선원계보기략’의 편찬을 중심으로」 / 홍순민 / 『한국문화』11, 1990
집필자
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