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1897]황후세보(皇后世譜)

UCIG002+JSK+KSM-WJ.1897.1111-20120515.K21704
분류
형식분류 고서-족보
내용분류 사회-가족/친족-족보
소장처유형 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지역
지역 한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연도 1897
월일 00/00 (음)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35.5, 가로 : 24.1
판본 필사본(筆寫本)
장정 선장(線裝)
수량 1冊(제5책)
판식 四周雙邊, 半郭 25.7 × 18cm, 烏絲欄, 半葉 10行 19字
재질 저지(楮紙)
표기문자 한자
비고
[청구기호]

K2-1704

[마이크로필름]

MF35-6631

소장정보
원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1897]황후세보(皇后世譜)

이 황후세보는 1897년 3월 2일 고종의 황후를 明成이라고 지칭한 이후에 편찬된 것이다. 황후세보는 황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황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전체 5권 5책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재 제5책 卷之五만 전한다.
황후의 부모로부터 6대조 민유중까지의 직계를 밝혀놓았다. 명성황후의 6대조는 민유중(1630∼1687)으로 그 이전의 계대는 이미 숙종비 인현왕후 부분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의 계대만을 수록한 것이다.
명성황후의 시호가 올려진 이후 이것을 반영하여 편찬한 것으로 왕비로 생존해 있을 때 편찬된 『왕비세보』(K2-1703)와의 비교를 통해 왕비황후세보의 개수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관련문헌
『돈녕보첩(敦寧譜牒)』「왕후편」『皇后世譜』
집필자
어강석

이 황후세보는 1897년 3월 2일 고종의 황후를 明成이라고 지칭한 이후에 편찬된 것이다. 황후세보는 황후 가문의 유래와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한 것으로, 황후의 직계를 밝히고 행장 및 비문을 수록하여 이해를 돕도록 하였다. 전체 5권 5책으로 편찬되었으나 현재 제5책 卷之五만 전한다. 『皇后世譜』(K2-1706)와 동일한 내용이다.


원자료제목
표제 皇后世譜
내제 皇后世譜

[내용 및 특징]
1. 『황후세보』의 편찬 시기
이 황후세보는 전체 5권 5책으로 편찬된 것이다. 그러나 현재 남아있는 것은 제5책인 卷之五 ‘今上后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明成皇后’만 전하고 있다. 간행연대는 정확하게 밝힐 수 없지만 권5의 표제의 기록에서 보이는 것처럼 고종비를 명성황후로 기록하고 있다. 따라서 1897년 3월 2일 고종의 황후를 明成이라고 지칭한 이후에 편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 때 황후의 시호를 명성황후라고 올리면서 왕비세보에서 황후세보로 수정하여 편찬한 것으로 보인다.

2. 『황후세보』의 체제 및 내용
모두 5권 5책으로 편찬된 것으로 현재는 마지막 제5책 卷之五만이 남아있다. 수록된 인물은 명성황후의 직계 조상들이다. 편찬체제는 첫 행에는 “今上后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明成皇后”라고 하여 제목을 삼았으며, 다음 행부터 황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유래를 간략하게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행을 바꾸어 황후의 부와 모, 조부와 조모의 순서로 6대조까지 기록하였다. 명성황후의 6대조는 민유중(1630∼1687)으로 그 이전의 계대는 이미 숙종비 인현왕후 부분에 수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후의 계대만을 수록한 것이다.
수록 인물의 기록 방법은 남성의 경우 황후와의 관계, 이름, 관직, 봉호, 시호, 생년, 과거력, 졸년, 향년, 묘소의 순서로 하였으며, 여성의 경우 부계와의 혼인관계 순서에 따라 기록하였으며, 봉호, 본관, 성씨, 某(관직 및 봉호, 이름)之女, 생년, 몰년, 향년, 묘소위치의 순서로 기록하였다.
명성황후의 아버지인 민치록의 묘소의 경우 바로 앞서 편찬하였던 왕비세보(K2-1703)에서는 경기도 利川 長壽旺面 島村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황후세보에서는 충청남도 보령으로 기록되어 있다. 이는 민치록의 묘를 1894년(고종 31) 3월 충남 보령으로 이장하고 신도비를 세웠는데, 이를 반영하여 수정한 것이다. 황후와의 관계는 父, 母, 前母, 生母 등으로 표기하였으며, 부모관계 이후로는 祖, 曾祖, 高祖, 五代祖, 六代祖로 표기하였으며, 여성은 配, 後配 등으로 표시하였다.
碑誌는 父와 母의 개인 기록 다음에 수록하였는데, 수록내용이 行狀인지 墓誌銘인지, 家傳인지를 밝힌 후, 전문을 기록하고 있다. 한 행이 17자로 기록되었으며, 마지막에는 撰者를 기록하였다.
수록된 비지문은 명성황후의 父 閔致祿(1799∼1858)의 行狀과 海寧府夫人墓誌이다.
[자료적 가치]
이 『황후세보』는 명성황후의 가문과 혈통을 밝히기 위해 편찬된 보첩으로, 황후 가문의 본관과 성씨의 연원을 밝히고 있으며, 인물들에 대한 碑誌文을 수집하여 부록하고 있다. 특히 부계뿐만이 아니라 모계의 비지문도 포함되어 있어 당시 왕실의 혈족에 대한 사고를 짐작할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또한 명성황후의 시호가 올려진 이후 이것을 반영하여 편찬한 것으로 왕비로 생존해 있을 때 편찬된 『왕비세보』(K2-1703)와의 비교를 통해 왕비황후세보의 개수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참고문헌
  • 「조선후기 선원 보첩류의 편찬체제와 그 성격」 / 원창애 / 『藏書閣』 17, 한국학중앙연구원, 2007
  • 「조선후기 『列聖王妃世譜』의 편찬 과정과 내용」 / 원창애 / 『列聖王妃世譜』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8
  • 「≪선원록≫의 편찬과 그 내용」 / 정재훈 / 『부산사학』 30, 1990
  • 「조선 후기 왕실의 구성과 선원록-1681년(숙종7) ‘선원계보기략’의 편찬을 중심으로」 / 홍순민 / 『한국문화』11, 1990
집필자
어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