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고서 > 금석문 > 경릉지석함첩(景陵誌石函帖)

UCIG002+JSK+KSM-WH.1904.4131-20160515.23887
분류
형식분류고서-금석문
내용분류교육/문화-예술-금석문
소장처유형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인명 홍씨(洪氏)
인명 미상
작성지역
지역 경기도 구리 (현재주소 : 경기도 구리시 동구동 산 2-1)
작성시기
연도 1904
형태사항
유형지석함(誌石函)
크기(cm) 세로 : 34.5, 가로 : 23.1
판본첩장본(帖裝本)
장정1帖 4折
탁본형태습탁(濕拓)
탁본서체 비액 : , 비신 : 해서(楷書)
수량1첩
판식
재질
표기문자한자
인장
개수형태색깔크기(cm)인문
비고
[청구기호]

2-3887

[건립/중립 연대]

1904년(건립)

소장정보
원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경릉(景陵)에 매장한 효정왕후(孝定王后)의 지석(誌石)의 탁본.


원자료제목
표제경릉지석함첩(景陵誌石函帖)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4대 국왕 헌종(憲宗, 1827~1849)의 계비 효정왕후의 지석을 담아 매안(埋安)한 지석함의 탁본을 첩장(帖裝)한 자료이다. 지석은 석재로 만든 함에 담아 매안하는데, 경릉지석함의 표면에는 ‘효정왕후지석함 경릉동원경좌갑향(孝定王后誌石函 景陵同原庚坐甲向)’의 모두 15자가 새겨져 있다. 이를 8면으로 나누어 첩장으로 장황하였다. 탁면은 자획이 선명하여 먹색을 입힌 상태가 고르고 좋다. 또한 지문(誌文)은 사자(死者)의 전기를 적은 산문 형식의 글로서, 판석(板石)인 지석(誌石)에 새겨 능에 매립하였으며, 매립한 이후에는 탁본이 불가능하므로 일반적으로 그 직전에 인출(印出)하였다. 따라서 지문을 탁본한 시기는 대부분 능을 조성한 시점과 일치한다. 따라서 이 지석함 또한 1904년(고종 8)에 효정왕후가 승하하자 지석을 제작하여 탁본하였음을 알 수 있다. 지석함에 담겼던 지문의 내용은 당시 의정이던 이근명(李根命, 1840~?)이 지었다.
영조대 이전에는 규모가 큰 석재에 지문을 새겼으나 그 이후로는 크기가 작은 여러 개의 지석에 지문을 나누어 새겨 능에 매장하였다. 이와 같이 지석의 제작에 따른 형식이 바뀜에 따라 여러 장의 지석을 담을 지석함이 별도로 제작되었다. 또한 지석함의 윗면에 묘호(廟號)나 능호(陵號)의 글씨를 새긴 예는 1724년(영조 원년)의 기록에서부터 보인다.
이와 관련하여 장서각에는 《헌종성황제경릉추숭비(憲宗成皇帝景陵追崇碑)》(1908년, 융희 2)가 있는데, 이 자료에는 효정왕후의 간략한 이력이 소개되어 있다. “계후(繼后) 명헌 숙경 예인 정목 홍성 장순 정휘 장소 단희 수현 의헌 강수 유녕 효정왕후 홍씨(明憲 淑敬 睿仁 正穆 弘聖 章純 貞徽 莊昭 端禧 粹顯 懿獻 康綏 裕寧 孝定王后 弘氏)는 순조 31년(1831) 정월 22일에 탄생하였다. 헌종 10년(1844) 왕비로 책봉되었고 광무 8년(1904) 11월 15일 승하한 후 그 이듬해 정월 29일 경릉에 동원이봉으로 장사지냈다. 수는 73세를 누렸다. 융희 2년(1908) 7월에 성황후(成皇后)로 추존되었다.”
피전자 효정왕후는 돈령부영사(敦寧府領事) 익풍부원군(益豊府院君) 홍재룡(洪在龍)의 딸로 1831년(순조31)에 태어났다. 헌종의 첫째 왕후였던 효현왕후가 사망한 지 1년만인 1844년(헌종 10)에 왕비에 책봉되어 가례(嘉禮)를 올렸다. 1849년 헌종이 23세의 나이로 병사하여 철종이 즉위하자 효정왕후는 대비(大妃)가 되어 명헌(明憲) ·숙경(淑敬)의 존호를 받았다. 1857년(철종 8) 순원왕후(純元王后)가 승하하자 왕대비(王大妃)가 되었고, 예인(睿仁) ·정목(正穆) ·홍성(弘聖) ·장순(章純) ·정휘(貞徽) 등의 존호가 더해졌다. 1903년 덕수궁 수인당에서 소생 없이 73세에 승하하였다.
이 탁본 외에도 장서각에는 경릉(景陵) 관련 금석문으로 《헌종경릉지문(憲宗景陵誌文)》(1849년, 헌종 15), 《헌종대왕경릉합봉비(憲宗大王景陵合封碑)》(1904년, 광무 8), 《헌종성황제경릉추숭비(憲宗成皇帝景陵追崇碑)》(1908년, 융희 2) 등이 소장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20세기 초반의 국장 때에 지석과 함께 지석함을 제작한 사실과 거기에 새긴 글씨의 내용과 형식 등을 알려주는 사례로써 조선 말기 왕실 장례문화의 일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집필자
성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