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고서 > 금석문 > 경빈김씨묘비문(慶嬪金氏墓碑文)

UCIG002+JSK+KSM-WH.1907.4128-20160515.23888
분류
형식분류고서-금석문
내용분류교육/문화-예술-금석문
소장처유형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인명 김씨(金氏)
인명 김학진(金鶴鎭)
인명 서긍순(徐肯淳)
인명 미상
인명 미상
작성지역
지역 경기도 고양 (현재주소 :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 산 38-4)
작성시기
연도 1907
형태사항
유형비문(碑文)
크기(cm) 세로 : 36.6, 가로 : 21.7
판본첩장본(帖裝本)
장정1帖 15折
탁본형태습탁(濕拓)
탁본서체 비액 : 전서(篆書), 비신 : 해서(楷書)
수량1첩
판식
재질
표기문자한자
인장
개수형태색깔크기(cm)인문
비고
[청구기호]

2-3888

[건립/중립 연대]

1907년(건립)

소장정보
원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헌종(憲宗)의 후궁 경빈김씨(慶嬪金氏)의 묘비문 탁본.


원자료제목
표제경빈김씨묘비문(慶嬪金氏墓碑文)

[내용 및 특징]
조선 제 24대 국왕 헌종(憲宗)의 후궁인 경빈김씨의 묘비 탁본을 13절의 탁첩(拓帖)으로 첩장(帖裝)한 자료이다. 원비는 1907년(광무 11)에 세워졌다.
탁본첩의 표제는 ‘경빈김씨묘비문(慶嬪金氏墓碑文)’이며, 마지막 면에 1973년 장서각에서 재장(再裝)했음을 밝혔다. 서첩의 앞부분에는 비석의 전면이 실려 있는데, 전서로 ‘대한경빈김씨지묘(大韓慶嬪金氏之墓)’라 씌여 있다. 한 글자가 한 면을 차지하도록 편집하였다. 이어 해서로 쓴 비석의 음기가 편집되어 있는데, 1면당 5행 9자로 편집하였다. 국왕 및 왕비, 빈을 지칭하는 글자의 경우 격자(隔字)를 시행하였고, 문장을 지은 찬자와 글씨를 쓴 서자의 경우 한 글자씩 낮추었다.
음기에는 ‘경빈김씨가 광무 11년에 사망하였다. 옮겨 이장한 휘경원의 옛 자리에 장례지냈고 무덤은 손좌(巽坐)로 잡았다. 왕명에 의해 김학진이 비기(碑記)를 작성하였다.’는 비문의 작성 경위와 ‘김장생의 9세손으로 헌종의 후궁으로 간택되었다. 후사는 없다. 순원, 신정, 효정 삼전(三殿)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고, 이들을 모시는 데 정성을 다했다. 60년 간 궁중에 머물면서 부덕을 지킴에 한 치의 소홀함이 없었다.’는 등 김씨의 일생을 정리한 내용으로 구성하였다. 마지막에 찬자인 김학진과 서자인 서긍순의 이름을 명시하였다.
피전자 경빈김씨는 1831년(순조 31) 당시 주부(主簿) 벼슬에 있던 김재청(金在淸)의 딸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다. 헌종이 자식이 없자 왕실의 후사를 위해 정식으로 간택하여 들인 후궁으로 1847년(헌종 13)에 입궁하여 빈으로 책봉되었다. 헌종은 경빈김씨를 위해 후궁에게는 이례적으로 창덕궁 내에 낙선재(樂善齋)를 지어 하사하였다. 슬하에 자식이 없어 1849년 헌종이 승하하자 궁에서 나와 사저에서 지내다가 1907년 77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사적 제200호 서삼릉 경내에 마련된 후궁 묘역에 안장되었다.
장서각에는 이 자료 외에도 15절로 편집된 탁본첩 『경빈묘비(慶嬪墓碑)』가 있다. 경빈김씨에 대한 자료는 이 탁본 외에도 고종의 명으로 김각현이 지은 묘지명이 전하는데, 장서각에 『경빈묘지문(慶嬪墓誌文)』의 서명으로 전한다.
[자료적 가치]
경빈김씨의 간략한 이력을 금석문을 통해 확인할 수 있고, 대한제국기 금석문의 제작과 장황방식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 『고종실록(高宗實錄』 / /
집필자
성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