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고서 > 금석문 > 가선대부동지의금부사정공묘갈(嘉善大夫同知義禁府事鄭公墓碣)

UCIG002+JSK+KSM-WH.1774.0000-20170515.B14B81
분류
형식분류고서-금석문
내용분류교육/문화-예술-금석문
소장처유형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인물
인명 정광제(鄭匡濟)
인명 서종급(徐宗伋)
인명 신회(申晦)
인명 김양택(金陽澤)
인명 미상
작성지역
지역 미상 (현재주소 : 미상)
작성시기
연도 1774
형태사항
유형묘갈명(墓碣銘)
크기(cm) 세로 : 35.2, 가로 : 19.5
판본첩장본(帖裝本)
장정
탁본형태습탁(濕拓)
탁본서체 비액 : 전서(篆書), 비신 : 해서(楷書)
수량1첩 23면
판식
재질
표기문자한자
인장
개수형태색깔크기(cm)인문
비고
[청구기호]

B14B-81

[건립/중립 연대]

소장정보
원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정광제(鄭匡齊)의 묘갈을 탁본하여 첩장한 금석첩.


원자료제목
표제가선대부동지의금부사정공묘갈(嘉善大夫同知義禁府事鄭公墓碣)

[내용 및 특징]
오위도총부 부총관을 지낸 정광제(鄭匡齊, 1688~1753)의 묘갈을 탁본하여 첩장본으로 장황한 탁본첩이다. 표제는 “정의금공묘갈(鄭義禁公墓碣)”이다. 자료의 외형 및 내용 부분의 글씨는 모두 양호한 편이다. 하지만 내용 가운데 일부가 훼손되어 상당수의 글자를 파악할 수 없다. 전면의 대자 “가선대부동지의금부사정공묘갈명(嘉善大夫同知義禁府事鄭公墓碣銘)”은 전서로 새겨졌으며 가선대부이며 예조참판을 지낸 김양택(金陽澤)의 글씨이다. 묘갈명 및 병서는 서종급(徐宗伋)이 지었고, 해서와 행서로 된 비문의 글씨는 신회(申晦)가 썼다.
묘갈명을 지은 서종급은 정광제와 동향의 친구로 1688년(숙종 14)에 태어났다. 정광제의 아들 한두(漢斗)의 청에 의해서 묘갈명을 지었다. 그가 지은 묘갈명에 의하면 정광제의 자는 정숙(正叔)이고, 본관은 연일(延日)이다. 고조 기수(箕壽)는 감찰(監察)을 지냈고, 증조는 직(溭), 조부는 지하(之河)이다. 선고는 생원 상길(相吉)인데 대사헌에 증직되었다. 선비(先妣) 남양홍씨(南陽洪氏)는 금부도사 응원(應元)의 딸이다.
내직으로는 장령, 승지, 형조참의 등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영광, 홍주, 김해 등에 출수하였다. 외직으로 나가 고을을 다스린 공적을 높이 평가받아 부총관과 동지의금에 제수되었다. 만년에는 충북 옥천에 돌아와 살다가 1753년(영조 29)에 졸하였고, 군의 동쪽에 있는 현동(玄洞) 선영 아래 갑좌(甲坐)에 장사지냈다. 그는 평생 “위엄은 청렴함에서 생기고 정치는 부지런함에서 이루어진다.(威生於廉, 政成于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좌우명 삼아 종신도록 실천하고자 하였다.
찬자 서종급(徐宗伋, 1688∼1762)의 자는 여우(汝愚)이고, 호는 퇴헌(退軒)이며, 관향은 달성(達城)이다. 1719년 증광문과에 급제하였고, 1721년 지평으로서 왕세제의 대리청정을 건의한 조성복(趙聖復)을 두둔하다가 탄핵되어 강진의 고금도에 유배되었다. 1725년 해배되어 대사간·대사헌·예조참판 등을 지냈다.
글씨를 쓴 신회(申晦, 1706∼?)의 자는 여근(汝根)이고, 본관은 평산이다. 1741년 진사가 되었고, 1743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수찬·교리·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 병조판서, 이듬해 예조판서가 되었다. 1772년 좌의정에 올랐다가 영의정이 되었다.
전액을 쓴 김양택(金陽澤, 1712~1777)은 본관이 광산이고, 자는 사서(士舒), 호는 건암(健庵)이다. 김장생의 5세손으로, 할아버지는 숙종의 장인이었던 만기(萬基)이고, 아버지 진규(鎭圭)는 예조판서를 지냈다. 1767년에 우의정이 된 뒤, 1776년에는 영의정에 올랐다. 아들 하재(夏材)가 역신으로 몰리자 여기에 연좌되어 벼슬을 추탈 당했다가 복관되어 영돈녕부사가 되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가 대제학을 역임,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자료적 가치]
정광제의 생몰년과 활동사항을 확인할 수 있다. 자료의 내용 가운데 몇 자가 탈락되었으나 김양택의 전서와 신회의 글씨가 모두 좋기 때문에 서예사 분야에서도 참고자료가 된다.
참고문헌
  • 『景宗實錄』, 『英祖實錄』, 『國朝榜目』, 『淸選考』, 『東國文獻備考』/ /
집필자
성인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