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형분류 > 고서 > 의궤 > [고종태황제·명성태황후]부묘주감의궤([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主監儀軌)

UCIG002+JSK+KSM-WA.1921.1111-20100615.K22218
분류
형식분류 고서-의궤
내용분류 국왕/왕실-의례-의궤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편찬, 행사주관
단체/기관명 부묘주감
담당자 부묘주감도제조(祔廟主監都提調) 민영규(閔泳奎)
작성지역
지역 경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작성시기
연도 1921
월일 03/31 (양)
정보원표기 大正十年三月三十一日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42, 가로 : 30
판본 필사본
장정 線裝
수량 2卷 2冊 287張(1권 1책 137장, 2권 2책 149장)
판식 四周雙邊, 26.9 × 20.8cm, 朱絲欄, 半葉 10行 20字, 上二葉花紋赤魚尾
재질 李王職罫紙
표기문자 한자
도설 26면(채색), 반차 47면
인장
개수 형태 색깔 크기(cm) 인문
奉謀堂印
비고
[청구기호]

K2-2218

[마이크로필름]

MF35-668

소장정보
원소장처 적상산 사고 (현재주소 : 전라북도 무주군 적상면)
현소장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고종태황제·명성태황후]부묘주감의궤([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主監儀軌)

1921년고종태황제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의례의 전말을 시일, 좌목, 하교급상계, 의주 등 일정한 순서에 따라 정리해 놓은 의궤이다.
「시일(時日)」은 1921년 2월 16일에 주감의 당상과 낭청을 재가하고 18일에 창덕궁 내관청에 회동하여 일을 시작한 이래로 3월 31일 오전 6시 장조의황제를 영녕전에 조천하는 일까지 진행된 상세 일정이다. 「좌목(座目)」은 부묘주감에 소속된 도제조민영규, 제조민영휘 등 10인, 고문박영효 등 8인, 도청이덕주 등 4인, 낭청정인환 등 22인, 감조관심재덕 등 15인, 서기유기종 등 8인의 명단이다. 「하교급상계(下敎及上啓)」는 순종의 명령과 이왕직 장관이 아뢰어 재가 받은 기사를 날짜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의주(儀註)」는 「효덕전에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를 친행하는 의절(孝德殿告動駕祭親行儀)」 등 각 의례의 절차를 상세히 정해놓은 규정이다. 「효덕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와 「경효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 「휘호책보」는 명성황후 옥책 1건과 그에 부속되는 각종 물건 제작에 소용되는 재료와 규격, 옥책문, 옥보의 규격과 재료․보식(寶式) 및 각 부속품의 규격과 재료 등을 정리해 놓았다. 「책보봉과식」은 옥책과 옥보를 싸고 묶어서 함과 보록에 넣고 근봉하여 배안상에 올려놓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에 대한 규식이다. 「제주시제구(題主時諸具)」는 신주에 글씨를 쓸 때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정리해 놓았다. 「감실 이하 제구(諸具)」는 감실과 신탑, 답장(踏掌), 책장, 보장, 선개기(扇盖機), 망건장(網巾帳), 외면장(外面帳), 격장(隔帳), 주렴, 격렴(隔簾), 이안기(移安機) 등의 규격과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를 정리해 놓았다. 「수리」는 종묘 18실과 19실, 종묘의 외주렴, 영녕전의 외주렴, 어재실의 남문장(南門帳), 종묘 향대청의 문, 공신당의 신장, 경효전의 책보 봉과시의 내외보 등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재료와 양을 정리해 놓았다. 「연여의물(輦轝儀物)」은 정연(正輦) 1좌 등을 수리하거나 새로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을 정리해 놓았다. 「의장」은 황룡기 등 각종의 의장을 수선하거나 새로 갖추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에 관해 정리해 놓았다. 「배향신 위판」은 배향공신의 위판 규격과 위판에 글씨를 쓰는 식, 위판을 제작하고 글씨를 쓰는데 소용되는 재료와 규격 등을 정리해 놓았다. 「배향신 교서」는 배향공신인 우의정 박규수와 우의정 신응조, 좌찬성 이돈우, 참정 민영환 등에게 개별적으로 내린 교서와 전체적으로 내린 교서를 수록해 놓았다. 「군정인수(軍丁人數)」는 경효전에 휘호를 올릴 때, 효덕전을 부묘할 때, 경효전을 부묘할 때, 조천 및 5실을 이환안할 때, 신탑을 배안할 때, 책보장을 배안할 때 동원된 군정의 수를 정리해 놓았다. 「부묘후 소화물종(燒火物種)」은 부묘한 후에 불에 태운 물건 명단이다. 「부(附) 중화전 어진봉안 선원전」은 중화전에 봉안된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새로 건립한 선원전으로 옮겨 봉안할 때 함께 옮겨갈 도사본(圖寫本)과 준비해야 할 기명, 반차 그리고 날짜순의 계사, 의주 등을 정리해 놓았다.
목차 이외에 추가한 주제는 배향공신 배부절차(配祔節次), 「효덕전에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를 친행하는 의절(孝德殿告動駕祭親行儀)」,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高宗太皇帝神主詣宗廟儀)」,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明成太皇后神主詣宗廟儀)」, 「친림하여 희생을 점검하는 의절(親臨省牲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의절(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儀)」, 「장조의황제를 조천하는 의절(莊祖懿皇帝祧遷儀)」, 「배향공신의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드리는 의절(題配享功臣位版宣敎書致祭儀)」 등이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시일(時日)

1921년 2월 16일에 주감의 당상과 낭청을 재가하고 18일에 창덕궁 내관청에 회동하여 일을 시작한 이래로 3월 31일 오전 6시 장조의황제를 영녕전에 조천하는 일까지 진행된 상세 일정이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좌목(座目)

부묘주감에 소속된 도제조 민영규, 제조 민영휘 등 10인, 고문 박영효 등 8인, 도청 이덕주 등 4인, 낭청 정인환 등 22인, 감조관 심재덕 등 15인, 서기 유기종 등 8인의 명단이다. 임기와 중간에 교체된 사항을 모두 기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하교급상계(下敎及上啓)

순종의 명령과 이왕직 장관이 아뢰어 재가 받은 기사를 날짜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그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업무를 담당할 주감의 설치 날짜를 대상(大祥) 후로 함, 부묘를 고유하는 날짜는 담월(禫月) 내에서 택하기로 함, 명성태황후의 추상휘호를 의논하여 정하는 길일을 택하고 같은 날에 친척 및 귀족, 당직장관 등이 참여하여 회의하기로 함, 명성태황후의 추상휘호를 정해 별단을 들였는데, ‘제휘열목(齊徽烈穆)’이라 함, 종묘의 실수의절(室數儀節)에 대한 회의에서 이재완, 민영휘, 민병석 등이 참여하여 각자의 의견을 올렸는데 모두 천자칠묘(天子七廟)를 적용할 것을 주장하여 이를 수용하고 장조의황제의 조천을 거행하도록 명함, 배향할 신하의 회권(會圈) 결과 우의정 박규수가 24점이고 우의정 신응조와 행좌찬성 이돈우, 참정대신 민영환, 찬정 최익현이 모두 25점임, 찬정 최익현은 아직도 절혜(節惠)의 은전을 입지 못했다는 사유로 제외함, 부묘주감의 담당자들을 임명함, 주감은 창덕궁 내관청(內官廳)에 설행하도록 함, 명성태황후의 옥책문 제술관으로 이재완, 예차 김윤식, 서사관 김춘희, 예차 민형식, 옥보전문 서사관 민영휘를 임명함, 경효전의 신주를 고쳐 쓸 개제주관으로 조동윤을 임명함, 부묘할 실의 감실과 신탑, 책장, 보장, 제기, 상탁 등 각양 제구들은 종묘 각실에 있는 것들을 봉심한 연후에야 어긋나는 근심이 없을 것이며, 효덕전과 경효전의 제기도 그대로 쓸 것인지 새로 만들 것인지 봉심한 후에 거행할 수 있을 것이니, 도제조와 주감의 당상과 낭청이 가서 봉심할 길일을 택하도록 할 것, 예식과장과 주감 당상 및 종묘전사가 함께 가서 봉심하기로 함, 봉심 때 도제조 민영휘가 반드시 가야 하나 신병으로 제조가 대신 가도록 함, 봉심 후 그대로 쓰거나 새로 만들 제기의 종류와 수량, 명성태황후 추상휘호의 보식(寶式)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제휘열목명성태황후보(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誠德齊徽烈穆明成太皇后寶)’, 배안상은 효덕전과 경효전 이안청에 있는 것을 옮겨다 쓰는데 미리 가져와서 수리할 곳이 있는지 간심하도록 함, 장조의황제는 상례보편에서와 같이 합향(合享)하고서 조천할 것, 부묘하는 의절은 병오년의 예와 같이, 거둥을 아뢰는 제사를 친행한 후에, 신주가 종묘에 이르렀을 때 배종하여 묘문밖에 이르러서 악차에 들이고, 신주가 이르렀을 때 차에서 나와 지영하고나서 곧 망묘망전례 및 부향을 행한 후에 환궁기로 함, 경효전의 추상휘호 의절은 섭행으로 하도록 함, 신여와 의장 요채여 등 각양 의물은 효덕전과 경효전의 신위가 종묘로 갈 때 서로 가져다 쓸 것, 부묘할 신위와 올려 모셔야 할 신위는 협향(祫享)한 후에 차례대로 올려 모시므로 안신제(安神祭)를 일체로 거행할 것, 정조실 이하 각실의 신위는 잠시 이안하는데 이 사실을 고유제의 축문에 써넣을 것, 명성태황후의 옥책문 초도서 한 본을 들여 재가받은 후에 서사관 김춘희가 정서하여 새기도록 할 것, 경효전에 휘호를 추상하고 책보를 바치며 신주를 고쳐 쓸 길일을 택함, 선고사유 이안제는 새벽에 먼저 행하고 환안제는 환안이 끝난 후에 설행하며 선고사유제 축문에 추상휘호와 신주를 고쳐 쓰는 일에 관한 내용을 추가해 넣을 것, 배향공신은 봉상시에서 위판을 만들어 각 집안의 사당에 보내고 관리를 파견해 위판에 글을 쓰며 교서를 선포하고 제사를 행하며 부묘할 때가 되어 혼전에 이르고 신연이 종묘로 갈 때 뒤에서 배종하여 간다고 한 바와 같이, 교서의 제술과 위판 조성, 제관, 제물을 마련하여 거행해야 할 것, 배향공신의 교서 제술관으로 사신도(四臣都)교서제술관 정만조, 문익공박규수교서제술관 조한원, 문경공신응조교서제술관 박경원, 문정공이돈우교서제술관 이범세, 충정공민영환교서제술관 오정근을 임명함, 명성태황후의 신위에 글을 쓰는 법식 ‘‘효자원성정화합천홍공성덕제휘열목명성태황후(孝慈元聖正化合天洪功誠德齊徽烈穆明成太皇后)’, 경효전의 추상휘호 책보를 내입 내출할 처소는 인정전 동행각으로 정함, 허다한 차비관이 다 조복을 입기가 어려우니 교명과 책보를 받드는 관원과 대축, 섭통례, 배향공신 독교관 외에는 흑단령을 입고서 행례할 일, 각 예고제(預告祭)의 날짜, 제기를 검사하는 의절은 친림으로 할 것, 종묘의 제관은 기일 전에 차출하여 습의에 참여시킬 것, 경효전에 휘호를 추상할 때 종묘와 영녕전 효덕전 경효전 의효전에 고유제를 같은 날 새벽에 설행할 것, 조천하는 길시를 택하고 부향을 마치면, 장조의황제실은 종묘에서 영녕전 동협 제5실로 옮겨 모신 후에 안신제를 설행하고 정조 이하의 각실은 위차를 올려 봉안함을 당하여 배설할 장막 등 모든 도구는 옮겨 설치한 연후에 신주 및 감실을 받들어 옮기고 올려 봉안한 후의 안신제는 시간에 맞추어 설행할 것, 정조실 이하 각 신위를 올려 봉안할 때 시각이 지연되는 사유를 축문에 추가해 넣을 것, 종묘 남문 밖의 신악(神幄)에 소용되는 신좌(神座)와 교의(交倚) 등 물건은 양전(兩殿)에서 올린 것을 옮겨다 쓸 것, 종묘 남신문 밖의 신악에 배설할 모란병풍 2좌는 양전에 있는 것을 옮겨다 쓸 것, 명성태황후의 휘호를 추상하고 책보를 바칠 때 각 차비관의 명단, 신주를 고쳐 쓸 대 각 차비관의 명단, 책보를 내입 내출하는 길일의 추택, 도제조 민영규가 청대하여 입시한 고문과 장관, 제조에게 고종태황제를 세실로 지정하는 사안을 묻고 곧 의논하여 이에 동의함으로써 관련 의절을 거행하도록 함,
경효전에 휘호를 추상하고 책보를 바치며 신주를 고쳐 쓰고 환안제를 지낼 때의 응행절목 8조〈1. 책보는 주감에서 내입할 때 주감 도제조 이하 및 예식과장, 각 차비관이 모두 담복을 입고서 책보를 받들어 각각 요채여에 싣고 모시고서 나아간다. 찬시 역시 담복을 입고 전해 받들어서 들인다. 1. 경효전에 책보를 바치고 신주를 고쳐 쓰는 것을 고유하는 제사는 관원을 파견하여 설행한다. 1. 같은 달 9일에 종척 및 참반원은 모두 담복을 입고서 먼저 신문 안으로 나아가며, 같은 날 책보를 바치고 신주를 고쳐 쓰는 일 및 환안제는 시간이 되면 행례하되 의례대로 한다. 1. 책보를 내입하여 어람한 후에 궐 안의 별전에 임시로 봉안하였다가 내출하는 날에 주감 도제조 이하 및 예식과장, 각 차비관은 모두 담복을 입고서 책보를 청해 내와 각각 요채여에 싣고 모시고서 나아가 경효전 신문 밖에 이르러서 임시로 악차에 안치하고, 안에 머무르는 예식관원이 지킨다. 행례는 때에 임하여 봉안한다. 1. 신주를 쓸 때 탁자 셋을 전각 안의 신탑 동남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필연묵과 광칠한 관반, 관이, 향탕, 식건 등 모든 도구는 봉상소 관원이 담당하여 받들어 올린다. 행용은 주감에서 검칙하여 거행하되, 악차 및 전정에 배설할 모든 일은 역시 회계과에서 수복 등과 함께 알아서 배설하게 하여 임시로 군급한 근심이 없도록 하며, 임시로 비가 올까 염려스러우니 악차와 유차일을 모두 배설할 것. 1. 신주를 고쳐 쓸 때 신악이 오래도록 열려있고 번거롭고 시끄럽게 출입하여 미안할 듯하니 미리 자세히 의논하여 시작 즉시 고쳐 쓸 것. 1. 책보를 바치는 것은 의례대로 행례한다. 마치면, 신주를 고쳐 쓸 때 제주관이 신주를 쓸 탁자 앞에 이르러 북향하여 서고 대축이 신주를 받들어 탁자에 안치한다. 제주관이 신주에 글씨를 쓴다. 마치면, 종척 및 참반원은 잠시 물러난다. 환안제를 지낼 때 종척 및 참반원은 곧 담복을 입고서 들어와 차리로 나아가 행례하는데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물러간다. 1. 휘호를 올리고 신주를 쓰는 뜻은 모두 제문 안에 넣어 찬진하고, 책보를 바칠 때의 치사 역시 지어내게 할 것.〉
책보를 봉과하는 길일시를 점침, 부묘 때의 각양의 일시〈경효전에서 습의하러 출발하는 시각부터 안신제가 끝나는 시각까지 차례로 정리해 놓았음〉, 부묘 때 행렬이 지나가는 도로, 옥책문과 옥보문을 봉하여 들임, 낭청과 별감동을 추가로 임명함, 부묘하기 전에 먼저 책보를 감실 내의 보장에 봉안하기로 함, 효덕전 망제 친행 때의 악장문을 지을 제술관을 윤용구로 임명함, 부묘대제 친행 때의 제관 명단, 부묘 후 영녕전대제 섭행 때의 제관 명단, 안신제 제관 명단,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 부묘 때의 응행절목〈1. 3월 30일 왕전하가 원유관과 강사포를 갖추고서 여를 타고 효덕전 재전에 이르러서 면복으로 고쳐 갖춘다. 종척 및 참반원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행한다.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가 끝나면, 왕전하는 재전으로 돌아가고 종척 및 참반원은 물러간다. 1. 경효전에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라면, 효덕전의 행제는 일시로 관원을 파견하여 섭행할 것. 1. 같은 날 오후 1시에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로 나아갈 때 신연 앞에 노부의장이 있고 전부고취와 찬시, 신연, 후부고취, 종척 및 참반원이 차례하고 종척 및 참반원은 효덕전에서 제사를 모신 후에 곧 조복과 흑단령으로 나와 돈화문 밖에 이르러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왕전하는 곧 면복을 갖추고서 여를 타고 인정문 밖 악차에 이른다. 신연이 장차 이를 때 왕전하는 차에서 나와 국궁하여 지영한다. 마치면, 도로 악차로 들어간다. 조금 있다가 차에서 나와 말수레를 타고 출궁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신연이 장차 이를 때 국궁하여 지영하고, 왕전하가 장차 이를 때 국궁하여 지영하고서 차례로 시위하여 종묘 대문 밖에 이른다. 신주가 연에서 내려 여를 타고 남문(신문) 밖에 이르러서 여에서 내려 들어가 악차에 봉안한다. 왕전하는 종묘 대문 밖에 이르러서 말수레에서 내려 여를 타고 동문을 거쳐 악차로 들어간다. 종척 및 참반원은 뒤에 떨어져 있는다. 1. 고종태황제 신주가 종묘에 이르러서 들어가 악차에 봉안한 후, 명성태황후 신주는 곧 받들어 종묘에 이르고 명성태황후 신연은 어가를 따른다. 종척 및 참반원은 효덕전에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에서 반열을 따라 행례한다. 마치면, 먼저 경효전 신문 밖에 이르러서 곧 조복 및 흑단령으로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서있다가 신연이 장차 이를 때 국궁하여 지영하고서 차례로 시위한다. 왕전하를 시위하는 종척 및 참반원은 모두 조복 및 흑단령으로 종묘 동구 밖에서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서있다가 신연이 장차 이르면 국궁하여 지영한다. 신연이 종묘 대문 밖에 이른다. 신주가 연에서 내려 여를 타고 들어간다. 신여가 장차 이를 때 왕전하는 곧 면복을 갖추고서 차에서 나와 종묘 남문 밖의 도 왼쪽에 이르러서 국궁하여 지영한다. 신여가 남문(신문) 밖에 이르러서 여에서 내려 들어가 악차에 봉안한다. 왕전하는 재전으로 들어간다. 1.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러서 들어가 악차에 봉안한 후, 전알할 시간이 되면 종척 및 참반원은 모두 조복 및 흑단령으로 먼저 묘정으로 나아간다. 왕전하는 곧 면복을 갖추고서 판위에 이르러서 전알례를 행한다. 마치면, 왕전하가 사당 안을 봉심할 때 찬시만이 따라 들어간다. 종척 및 참반원은 곧 묘정에 차례로 서있는다. 봉심 후 왕전하는 제기위에 이르러서 제기를 살피는데,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왕전하는 곧 영녕전에 이르러서 전알례와 봉심, 생기를 행하는데,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왕전하는 도로 재전으로 들어간다. 제향관과 종척 및 참반원은 재전의 남쪽으로 나아가 품지하고 차로 나아가서 숙위하는데, 정해진 대로 한다. 1. 같은 달 31일 부묘제 때 왕전하는 면복을 갖춘다. 예의사와 찬시, 헌관, 제집사는 제복을 입고, 종척 및 참반원은 모두 조복 및 흑단령으로 의례대로 행례한다. 마치면, 왕전하는 재전으로 돌아간다. 1.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효덕전 내문 밖에서 여에서 내려 연을 타고 종묘 대문 밖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여를 타고 남문 밖에 이르러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이고,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경효전 내문 밖에서 여에서 내려 연을 타고 종묘 대문 밖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여를 타고 남문 밖에 이르러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일 때 각항의 승강 절차와 배설하는 모든 일은 회계과에서 몸소 친히 기다렸다가 미리 먼저 거행할 것. 1. 양전 신주의 부알례(祔謁禮) 때 부알하는 자리 및 부알 후 여에서 내리는 곳은 모두 예문에 의거하고, 때에 임해 욕석을 설치하되 사당의 남문 밖에 교명과 책보 및 각양 의물을 임시로 안치할 막차와 일응 배설할 모든 일은 회계과 관원이 기일 전에 정제하여 대령하고, 실 안에 배설할 모든 일과 응당 사용할 제기 등 물건은 역시 종묘 관원이 기일 전에 받아 가서 배설할 것. 1. 양전 신주가 종묘로 나아갈 때 교명과 책보를 받들어 내어 요여에 안치할 때 및 종묘 남문 밖과 실의 문 밖에 봉안할 때 십분 신중하게 하여 실수하는 근심이 없도록 하고 응행집사 인원은 예식과에서 정제하여 거행할 것. 1.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로 나아갈 때, 시위와 찬시, 의장, 전후부고취, 각 차비는 사례에 비춰 마련하여 거행하고, 별감 6인은 자의(紫衣)와 자건(紫巾)을 착용하고 신연 앞에서 시위할 것. 1. 배향신의 위판은 효덕전 외문 안에서 대략 막차에 안치하고 머물렀다가 예문에 의거하여 신연 뒤에서 가되, 예문 내에 공신의 요여는 종묘의 남문 밖 남쪽 가까이에 북향하여 멈추고, 신주가 올라가 합사하기를 기다린 후에 집사 등이 위판을 받들어 서문을 따라 들어가 자리에 안치한다고 한다. 잠시 머무르는 막차를 배설하는 모든 일은 회계과에서 거행하고, 봉상소 관원 각 1원 및 배향공신을 수행하는 차비관 각 1원을 차출하여 모두 흑단령을 착용하고 종시토록 수행하되, 예문 내에 부향할 때 배향공신을 제사한다고 한다. 새로 들인 네 신하를 부향할 때 위차와 읽을 교서를 지어내는 등의 일은 미리 지어 바치고, 서사독교서관과 전교서관의 차출과 교서를 담을 함과 보, 상건 등 모든 도구는 예식과에서 진배하기를 기다릴 것.〉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를 영녕전에 조천할 때의 응행절목〈1. 부묘제를 마치고 조천할 시간이 되면, 재랑 등은 요여를 장조의황제실의 문밖에 들여다 진설한다. 황제의 여는 서쪽이고 황후의 여는 동쪽이다. 종척 및 참반원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먼저 사당의 남문 밖으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서있는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들어가 장조의황제실의 문밖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대축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여에 안치하고 중계로 내려간다. 내갈 때에는 황제 신주가 먼저 나가고 들일 때에는 황후 신주가 먼저 들어간다. 왕전하는 내려가 동계 아래에 이르러서 지영하는데, 의례대로 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국궁하여 지영하고 차례로 시위한다. 신여는 남문을 거쳐 나가서 영녕전 동협실 문밖에 이르러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인다. 종척 및 참반원은 들어가 전정으로 나아가서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서서 감실을 롬겨 배설하는 것을 기다린다. 마치면, 대축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 동협 제5실에 봉안하고 본 사당의 관원이 전담하여 봉안례를 거행하게 한다. 마친 후에 종척 및 참반원은 도로 묘정으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서 차례로 서있는다. 1.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의 신여가 사당의 남문을 나간다. 왕전하는 올라가 정조선황제실 문밖에 이르러 북향하여 선다. 재랑은 요여를 들여다 정조선황제실 문밖에 진설한다. 대축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 요여에 안치하여 잠시 이안하고, 다음으로 이하 각실에 이르러서 이안은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감실을 옮겨 배설하는 것을 기다린 후에 요여에 안치하고 차례대로 환안하고 올려 묘셔서 새로 합사하는 실에 이른다. 각실을 이환안할 때 왕전하는 뒤를 따르는데, 전조선황제와 효의선황후의 신주궤는 제13실에 올려 모시고, 순조숙황제와 순원숙황후의 신주궤는 제14실에 올려 모시며, 문조익황제와 신정익황후의 신주궤는 제15실로 올려 모시고, 헌종성황제와 효현성황후 효정성황후의 신주궤는 제16실로 올려 모시며, 철종장황제와 철인장황후의 신주궤는 제17실로 올려 모시고, 고종태황후와 명성태황후의 신주궤는 제18실로 올려 모시되 봉안례를 마친 후에 왕전하는 도로 재전으로 들어갔다가 내전으로 돌아가는 것은 의례대로 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물러간다. 1.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의 신주가 영녕전으로 나아갈 때 봉교명관 2명과 봉책관 34명, 봉인보관 38명, 거안집사 42명, 신주출납대축 2명, 섭장례 2명, 로합차비관 4명, 궤대차비관 4명, 신여담배군 20명, 촉롱 8명, 분좌우향정 2명, 신여 및 의물 등 모든 도구의 각 차비인은 모두 전례대로 주감에서 마련하여 거행한다. 이외 응당 들어가는 각 차비 역시 주감에서 참작하여 마련하여 이렇게 차정하고 습의할 때 모두 참여시킬 것. 1. 장조의황제와 헌경의황후의 신주가 영녕전에 이르렀을 때 부알례는 협실이 정전과 달라서 전례대로 거행하지 말 것. 1. 장조의황제의 신주를 조천한 후에 배향공신의 위판 역시 처리해 두어야 한다. 조천 즉시 봉상소 관원이 요여로 위판을 받들어 내와 그 자손에게 전해 주어 무덤가에 매안하고 요여 제구 및 담지군 등 역시 주감에서 거행할 것. 1. 장조의황제 신주를 조천한 후 정조선황제실 이하 각실을 이환안하고 올려 모실 때 대축과 향로 향합 차비인은 사례에 비춰 차출할 것. 1. 정조선황제실 이하 각실을 올려 모실 때 책보 및 각양 의물을 이설하는 등의 일은 종묘 관원이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정제하여 거행할 것. 1. 조천할 때 영녕전 동협실 문밖에 임시로 안치하는 악차 및 종묘 각실을 올려 모실 때 각양의 배설은 회계과에서 지휘를 기다렸다가 거행하고 주감에서 검칙할 것.〉
효덕전 악장문을 제술관 윤용구가 지어서 바친 별단, 부묘하기 전에 먼저 제찬을 진설하도록 함, 부묘 습의는 일자가 급박해 3회를 겸행하는 것으로 마련하도록 함, 배향공신의 위판을 쓰고 치제하는 길일을 점침, 습의 길일을 점침, 부묘 때 각 차비관 명단, 조천 때 각 차비관 명단, 정조선황제 이하 각실을 이환안하고 올려 모실 때 각 차비관 명단, 배향공신의 위판을 쓰고 치제할 때 각 차비관 명단, 주감에서 새로 만든 감실 신탑 책장 보장 제기 상탁 등 물건을 종묘에 배진함, 신좌와 교의 등을 당일에 이설하면 곤란함이 있을 우려가 있으니 기일 전에 주감 낭청이 받아내어 종묘에 배진할 것, 도제조 등이 종묘에 이르러 감실 신탑 등을 제19실에 배설할 것, 부묘대제를 섭행으로 할 것을 요청하였으나 정례가 매우 깊어 출환궁을 종묘의 북장문으로 하기로 함, 조천과 이환안 행례를 섭행으로 할 것을 요청하여 부득이 따르기로 함.

【용어해설】
추상휘호(追上徽號) : 사망한 국왕이나 왕비 등에게 올리는 휘호
절혜(節惠) : 죽은 사람의 생전 업적을 평가하여 올리는 존호의 하나로 시호(諡號)와 같은 말. “先王諡以尊名 節以壹惠(선왕이 시호로써 이름을 높이고 한 가지 선으로써 요약했다.)[『禮記』〈表記〉 ]
옥책문제술관 : 제술관은 문장을 짓는 일을 맡은 관원의 임시직책으로, 옥책문제술관은 옥책에 새길 문장을 짓는 일을 맡은 관원의 직명이다.
옥보전문서사관(玉寶篆文書寫官) : 옥보'는 옥으로 만든 어보를 말하는데, '옥보전문서사관'은 옥보에 새겨질 글자를 정해신 서사식(書寫式)에 따라 전서로 서사하는 서사관을 말한다.
예차(預差) : 실차(實差)가 어떤 사정으로 해당 임무를 수행할 수 없게 될 경우를 대비해 예비로 뽑은 관원. 실차는 1명, 예차는 1~2명을 뽑는 것이 일반적이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의주(儀註)

각 의례의 절차를 상세히 정해놓은 규정이다. 「효덕전에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를 친행하는 의절(孝德殿告動駕祭親行儀)」,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高宗太皇帝神主詣宗廟儀)」,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明成太皇后神主詣宗廟儀)」, 「친림하여 희생을 점검하는 의절(親臨省牲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의절(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儀)」, 「장조의황제를 조천하는 의절(莊祖懿皇帝祧遷儀)」, 「배향공신의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드리는 의절(題配享功臣位版宣敎書致祭儀)」이 수록되어 있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효덕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班次)

효덕전은 고종의 사당 이름으로, 고종의 신주를 종묘에 합사하고자 출궁할 때의 행렬의 차례이다. 그림은 생략하고 명칭으로 그 순서를 나타냈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경효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班次)

경효전은 명성황후의 사당 이름으로, 명성황후의 신주를 종묘에 합사하고자 출궁할 때의 행렬의 차례이다. 그림은 생략하고 명칭으로 그 순서를 나타냈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휘호책보(徽號冊寶)

명성황후 옥책 1건과 그에 부속되는 각종 물건 제작에 소용되는 재료와 규격, 옥책문〈제술관 이재완, 서사관 김춘희〉, 옥보의 규격과 재료․보식(寶式) 및 각 부속품의 규격과 재료 등을 정리해 놓았다.

【용어해설】
보식(寶式) : 보에 새겨질 글자, 즉 '보문(寶文)'을 기록한 것을 의궤에서는 '보식'이라 하며, 보문을 단순히 상하로 기록하거나, 또는 정방형 테두리 안에 글자를 배치하여 보여주기도 한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책보봉과식(冊寶封裹式)

옥책과 옥보를 싸고 묶어서 함과 보록에 넣고 근봉하여 배안상에 올려놓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에 대한 규식이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제주시제구(題主時諸具)

신주에 글씨를 쓸 때 들어가는 모든 재료를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감실 이하 제구(龕室以下諸具)

감실과 신탑, 답장(踏掌), 책장, 보장,
선개기(扇盖機), 망건장(網巾帳), 외면장(外面帳), 격장(隔帳), 주렴, 격렴(隔簾), 이안기(移安機) 등의 규격과 제작에 들어가는 재료를 정리해 놓았다.

【용어해설】
감실(龕室) : 신위를 봉안하기 위해 나무로 만든 장(欌).
신탑(神榻) : 신좌를 모시는 높고 큰 평상 같은 의물. 어탑과 같은 종류이다.
답장(踏掌) : 혼령이 밟고 신탑을 오르내릴 수 있도록 설치하는 댓돌 같은 기능을 하는 의물.
책장(冊欌) : 책문을 보관한 장.
보장(寶欌) : 보인을 보관하는 장.
선개기(扇盖機) : 선과 개를 세워놓을 수 있도록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기.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수리(修理)

종묘 18실과 19실, 종묘의 외주렴, 영녕전의 외주렴, 어재실의 남문장(南門帳), 종묘 향대청의 문, 공신당의 신장, 경효전의 책보 봉과시의 내외보 등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재료와 양을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연여의물(輦轝儀物)

정연(正輦) 1좌, 평교자 1좌, 신여 2좌, 요여 6좌, 채여 6좌, 향정자 1좌, 삼색촉롱(三色燭籠) 각 1쌍 등을 수리하거나 새로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을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의장(儀仗)

황룡기, 주작기, 가구선인기, 벽봉기, 홍문대기, 청룡기, 정축기, 정묘기, 정미기, 백택기, 용마기, 금자기, 주작현무청룡백호당, 웅골타, 가서봉, 한필, 정, 모절, 은립과, 은횡과, 금립과, 은장도, 금장도, 은등자, 금등자, 은월부, 금월부, 황개, 봉선, 작선, 황양산, 소금부월, 수정장, 황산선, 황일산, 황칠교의, 황칠각답, 은교의, 은각답, 은관자, 은우자, 향좌아, 장족아 등을 수선하거나 새로 갖추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에 관해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배향신위판(配享臣位版)

배향공신의 위판 규격과 위판에 글씨를 쓰는 식, 위판을 제작하고 글씨를 쓰는데 소용되는 재료와 규격 등을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배향신 교서(配享臣敎書)

배향공신인 우의정 박규수와 우의정 신응조, 좌찬성 이돈우, 참정 민영환 등에게 개별적으로 내린 교서와 전체적으로 내린 교서를 수록해 놓았다. 이 글을 지어서 바친 사람은 규장원좌교서 조한원, 지제교 박경원, 비서원승 이범세, 지제교 오정근, 제술관 정만조였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군정인수(軍丁人數)

경효전에 휘호를 올릴 때, 효덕전을 부묘할 때, 경효전을 부묘할 때, 조천 및 5실을 이환안할 때, 신탑을 배안할 때, 책보장을 배안할 때 동원된 군정의 수를 정리해 놓았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부묘후 소화물종(祔廟後燒火物種)

부묘한 후에 불에 태운 물건 명단이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부 중화전 어진봉안 선원전(附中和殿御眞奉安璿源殿)

중화전에 봉안된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새로 건립한 선원전으로 옮겨 봉안할 때 함께 옮겨갈 도사본(圖寫本)과 준비해야 할 기명, 반차 그리고 날짜순의 계사, 의주 등을 정리해 놓았다.
선원전 12실은 전에 북일영(北一營)이 있던 터에 새로 건립하였다. 그 후 1921년 3월 20일에 창덕궁 내 선원전에 봉안되어 있던 10실의 영정과 경운궁 내의 중화전에는 봉안되어 있던 고종태황제 어진은 새로 건립한 선원전에 봉안하고, 작헌례를 친히 행하였다.
계사는 이왕직장관이 아뢴 내용으로서, 작헌례를 행할 때의 응행절목 8조, 선원전에 이봉할 때 출납할 각신과 배종 및 차비관의 명단, 작헌례를 친행할 때의 제관 명단 등에 관한 것이다.
의주는 3종이 수록되어 있는데, 「선원전 각실의 영정을 선원전에 이봉하고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봉안하는 의절」, 「선원전 각실의 영정을 선원전에 이봉하고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봉안할 때 왕전하가 지영하는 의절」, 「선원전 작헌례를 친히 행하는 의절」이다.

【용어해설】
작헌례(酌獻禮) : 제사를 지낼 때 영전에 술을 따르는 예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배향공신 배부절차(配祔節次)

고종의 배향공신을 공신당에 합사하는 절차이다.
1. 배향공신인 문익공박규수, 문경공신응조, 문정공이돈우, 충정공민영환의 집에서 위판에 글씨를 쓸 때에는 교서를 제술관이 지어 바치고 위판에 글씨를 쓰는 길일을 부묘할 즈음으로 택일하여 거행하되, 그날 새벽에 봉상소의 관원 각 1원과 차비관 각 2원, 거안집사 각 1원이 위판을 받들어다 요여에 싣고 나뉘어 각각 그 집의 사당에 이르러서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지내는데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사당에 임시로 봉안한다. 부묘하기 하루 전 새벽에, 봉상소 관원이 도로 요여에 안치하여 효덕전 외문 안에 이르러서 별도로 설치한 장막에 임시로 봉안한다. 신연이 출발하기를 기다려 뒤에서 배종하여 가며 요여담지군 각 4명은 건복을 갖추고서 궐 안 및 종묘 남문 밖에 있는 권안처의 장막에 배설한다. 모든 일은 사례에 비추어서 거행한다. 제사를 내릴 때 제물은 봉상소에서 정결하게 준비하여 진배하고, 배설해야 할 차일과 상안 함보 등의 일은 회계과에서 진배하는데, 모두 주감에서 검칙하여 거행한다.
1. 배향공신 집의 사당에 관원을 파견하여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제관 각 1원, 독교관 각 1원, 전교관 각 1원, 제주관 각 1원을 차출하여 나무어 파견하고, 설행하는 제례는 한결같이 사제 때의 의주에 의거하여 거행하며, 교서는 향을 받을 때 전해주고 가져가서 행례할 일.
1. 배향공신 집에서 위판에 글씨를 쓸 때 설치할 탁자와 필연묵, 관반, 관이, 식건 등 모든 도구는 준비해서 진배할 것.
1. 향 및 교서, 위판, 요여는 각각 그 집에서 행례할 때 각 그 자손이 모두 그 집 대문 안의 길 왼쪽에 차례로 서서 국궁하여 지영하고 지송할 것.
1.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의 신주를 부묘한 후에, 배향공신의 위판을 뜰 가운데에 들여놓아 부알(祔謁)하는 뜻을 부친다. 마치면, 차례로 들여가 자리에 봉안하고 배설하는 모든 일은 사례에 비추어서 거행할 것.
1. 배향공신의 위판에 쓰는 글의 식은 봉상소 관원이 각 그 본가에다 직함을 물어보고서 써 오는데, 한결같이 전처럼 공신을 넣어 위판에 쓰는 식례대로 하여 잘못 쓰는 폐단이 없도록 할 것.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효덕전에 (고종)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를 친행하는 의절(孝德殿告動駕祭親行儀)」

순종이 고종 신주가 종묘로 거둥하는 사실을 고종 신령에게 미리 아뢰는 제사를 지내는 절차를 규정해 놓은 의주이다. 효덕전은 고종의 신주를 모신 혼전이다.
“하루 전에, 전사는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전각의 안팎을 소제한다. 집례는 왕전하의 욕위를 전각 안의 중앙에 북향하여 진설하고, 이강공의 자리를 문밖에 북향하여 마련한다. 집사자의 자리는 중문 안의 서쪽에 북향하여 설치하는데, 동쪽이 윗자리이다. 집례의 자리는 동계 아래의 서쪽 가까이에 서향하여 설치하는데, 찬자는 남쪽에서 조금 물러나 있고 북쪽이 윗자리이다. 종척 및 참반원의 자리는 외정에 설치하는데, 정해진 대로 한다. 문외위를 설치하는데, 제집사는 중문 바깥의 도(道) 동쪽에 겹줄로 북향하며 서쪽이 윗자리이다.
그날 행사하기 전에, 왕전하는 원유관과 강사포를 갖추고 여를 타고서 나온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강여소에 이른다. 찬시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여에서 내려 재전으로 들어간다. 전사는 신악을 정돈하며 먼지를 털어낸다. 전사관과 전사는 각각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들어가 축판을 신위의 오른쪽에 올리고〈점이 있다〉 향로와 향합 및 촉을 신위 앞에 진설한다. 다음으로 예찬을 진설하고 준을 문밖의 왼쪽에 진설하며 잔 하나를 준소에 놓는다.
3각 전에, 종척 및 참반원〈조복 및 흑단령을 입는다〉은 모두 문외위로 나아간다.
1각 전에, 제집사는 제복을 입고 문외위로 나아간다.〈손을 씻고서 들어간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서 들어가 전정으로 나아가 겹줄로 북향하며 서쪽이 윗자리이고 사배한다. 마치면, 자리로 나아간다. 전사관 이하는 들어가 전정으로 나아가 북향하는데 서쪽이 윗자리이다. 집례는 ‘사배’라고 말한다. 전사관 이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전사관 이하는 각각 자리로 나아간다. 종척 및 참반원은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이강공은 면복을 갖추고서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대축은 동계로 올라가 신위 앞에 이르러서 궤를 열고 신주를 받들어 내어 신좌에 진설하고 황저건을 씌운다. 궤를 뒤에 진설한다. 전사관과 전사는 음식을 올린다. 마치면, 찬시가 나아가 재전 앞에 당도하여 부복하였다가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나온다.〈관세하고서 나온다〉 찬례는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서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찬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찬시가 따라간다〉 집례는 ‘사배’라고 말한다. 찬례는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국궁사배흥평신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는 같다.〈찬자 역시 창한다. 무릇 집례를 말하고 찬자는 모두 전해 창한다. 뒤에도 이와 같다〉
찬례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준소에 이르러서 서향하여 선다. 찬시 1인이 술을 따르고 1인이 잔으로 술을 받는다. 찬례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신위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찬례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무릎 꿇고서 규를 꽂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무릎 꿇고 규를 꽂는다.〈꽂기가 불편할 것 같으면 찬시가 이어 받든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도 같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찬시 1인이 향합을 받들고 1인이 향로를 받들어 무릎 꿇고 바친다. 찬례가 세 번 향을 사를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세 번 향을 사른다. 찬시가 향로를 상에다 올린다.〈향을 바치는 것은 동쪽에서 서향하고 향로를 올리는 것은 서쪽에서 동향한다. 잔을 바치고 잔을 올리는 것은 이것에 준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서 잔을 드린다. 찬례가 잔을 들어 잔을 올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잔을 들어 잔을 올리고 잔을 찬시에게 주어 신위 앞에 올린다. 찬례가 규를 들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무릎 꿇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들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무릎 꿇는다. 대축은 신위의 오른쪽으로 나아가 동향하여 무릎 꿇고 축문을 읽는다. 마치면, 찬례가 부복흥평신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부복흥평신한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도 같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찬례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자리로 돌아간다. 집례가 ‘사배’라고 말한다. 찬례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국궁사배흥평신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도 같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집례가 ‘신주를 들이시오’라고 말한다. 대축이 신주를 들이는데, 의례대로 한다. 집례가 ‘찬례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망료위에 이르시오’라고 말한다. 찬례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망료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집례가 찬자를 거느리고서 망료위에 이르러 서향하여 선다. 집례가 ‘태우시오’라고 말한다. 대축이 축판을 받들어다 구덩이에다 태운다. 집례가 ‘찬례는 예필을 아뢰시오’라고 말한다. 찬례가 예필을 아뢰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왕전하를 인도하여 전문을 나간다. 찬례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규를 놓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서 규를 받는다. 왕전하는 재전으로 돌아간다. 이강공이 나간다. 종척 및 참반원이 나가 외문 밖으로 나아가서〈돈화문 밖〉 좌우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전사관 이하는 모두 배위로 돌아간다. 집례가 ‘사배’라고 말한다. 전사 이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하고 차례로 나간다. 집례가 찬자를 거느리고서 배위로 나아가 사배하고 나간다. 전사관은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예찬을 거둔다.〈경효전에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는 관원을 파견하여 섭행하는데, 의례대로 한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高宗太皇帝神主詣宗廟儀)」

“신주의 거둥을 아뢰기 하루 전에, 회계과에서는 왕전하의 악차를 효덕전 중문 밖에 동쪽 가까이 서향하여 설치한다. 지영하는 자리는 악차 앞에 설치한다. 이강공의 차는 왕전하 악차의 뒤에 조금 동쪽으로 서향하여 설치한다.〈배향 위판의 막차는 합문 안의 도 왼쪽에 설치한다〉 신주 악좌(幄座)는 종묘 남문〈신문〉 밖의 도 서쪽에 서쪽 가까이 동향하여 설치한다.〈각각 상과 욕석을 악차 안에 설치하는데, 황제는 오른쪽 황후는 왼쪽이다〉 왕전하 악차는 종묘 남문 밖의 도 왼쪽에 서향하여 설치한다. 지영하는 자리는 악차 앞에 설치한다. 이강공의 자리는 왕전하 악차의 뒤에 조금 동쪽으로 서향하여 설치한다. 또 대차를 재전에 설치한다.〈배향 위판의 막차는 신좌 악차의 뒤에 설치한다〉 종친 및 참반원이 지영하는 자리는 돈화문 밖의 동서에 설치한다. 섭사복정은 효덕전 문밖에 여연을 내놓고 산선과 의장 시위 향정 등을 진설한다.
그날에,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가 끝나면, 섭사복정은 요여를 문밖에 내놓고〈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산선 및 책보요여는 뜰에다 진설하고 또 연을 문밖에 남향하여 내놓는다. 노부와 의장의 배설은 식대로 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시립위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회계과에서는 왕전하의 어마차를 악차의 뒤에 내놓는다. 또 여를 합문 밖에 내놓는다. 이강공의 마차는 막차의 뒤에 내놓는다.
거둥할 시간에 되면, 찬시는 무릎 꿇고서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여를 타고 나온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악차 앞에 이른다. 찬시가 무릎 꿇고서 여에서 내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여에서 내린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악차로 들어간다. 이강공은 막차로 들어간다. 섭통례가 들어가 신좌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신좌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부묘할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 전위가 책보를 받들어 집사자에게 주어 요여에 둔다. 다음으로 전위가 궤를 받들어 여에 놓는다. 대축이 신주궤를 받들어 궤 앞에 안치하고 붙잡아 모시고서 중계로 내려온다. 산선과 시위는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연 앞에 이른다.〈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섭통례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연에 오를 것을 계청한다.〈여연을 오르고 내릴 때 섭통례가 모두 앞으로 나아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계청한다〉 대축이 신주궤를 받들어 연에 안치한다. 섭통례가 무릎 꿇고서 어가는 출발할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신연이 움직인다. 종척 및 찬시가 따른다.〈책보요여가 앞서 간다〉 섭통례가 껴서 인도하여 나간다.〈공신위판요여는 거리의 동쪽에 머물러 있다가 신연 뒤를 배행한다〉 의장과 시위의 도종은 정해진 대로 한다. 고취는 진작한다.
신연이 장차 도착할 때, 찬시가 나아가 악차 앞에 당도하여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곧 면복을 갖추고서 차에서 나온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지영하는 자리로 나아간다.〈악차 앞에 설치한다〉 이강공은 지영하는 자리로 나아간다.〈막차 앞에 설치한다〉 신연이 이르면, 찬시가 무릎 꿇고 국궁할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한다. 지나가면, 평신할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평신한다. 이강공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놓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도로 악차로 들어간다. 이강공은 도로 막차로 들어간다. 신연이 돈화문 밖에 이른다. 종척 및 참반원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찬시가 나아가 악차 앞에 당도하여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곧 면복을 갖추고서 차에서 나온다. 찬시가 무릎 꿇고 어마차를 탈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어마차를 탄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찬시가 무릎 꿇고 출발할 것을 계청한다. 이강공은 마차를 타고 뒤를 따라 나간다. 어가가 돈화문 밖에 이른다. 종척 및 참반원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하여 차례로 시위한다.
신연이 종묘 외문 밖에 이른다. 제향관은 각각 조복을 입고서 외문 밖의 도 왼쪽에 서는데, 남쪽이 윗자리이다.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어가가 이르면 국궁하여 지영한다. 명성태황후의 신연이 이르면 역시 국궁하여 지영한다〉 고취는 그치고 좌우로 나뉘어 제향을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난다. 섭사복정은 요여를 신연 앞에 내놓는다.〈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섭통례가 나아가 신연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연에서 내려 여에 오를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대축이 신주궤를 받들어 여에 안치한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정문을 거쳐 들어간다.
신여는 종묘 남문 밖의 악차 앞에 이른다. 섭통례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어갈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대축이 신주궤를 받들어 악좌에 안치하고 책보를 받들어 악차 안에 둔다.〈모두 상이 있다〉 산선 및 의장은 모두 악차 앞에서 좌우로 나누어 진열하고〈공신요여는 종묘 남문 밖에서 남쪽 가까이 북향하여 멈추며, 황제 신주와 황후 신주가 올라가 합사하기를 기다린 후에, 집사자가 위판을 받들어 서문으로 들어가 자리에 안치한다〉 제향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물러난다.
처음 어가가 종묘 외문 밖 강연소에 이르렀을 때,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놓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 마차에서 내려 여를 탈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마차에서 내려 여를 탄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동문을 거쳐 들어가 강여소에 이른다. 찬시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여에서 내린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악차로 들어간다. 이강공은 종묘 외문 밖에 이르러 마차에서 내려 뒤를 따라 들어간다.
다음으로 명성태황후의 신연이 장차 종묘 동구밖에 이를 때, 종척 및 참반원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신연이 이르면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신연이 종묘 외문 밖에 이르러 연에서 내려 여에 올라 정문을 거쳐 들어간다. 찬시가 나아가 악차 앞에 당도하여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차에서 나온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지영하는 자리로 나아간다.〈악차 앞이다〉 신연이 이르면, 찬시가 무릎 꿇고 국궁할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한다. 지나가면, 평신할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평신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놓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도로 악차로 들어간다. 신여가 종묘 남문 밖에 이르러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어간다. 찬시가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차에서 나온다. 찬시가 무릎 꿇고 여를 탈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여를 탄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재전 앞에 이르러서 무릎 꿇고 여에서 내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여에서 내린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재전으로 들어간다.
묘사는 왕전하의 전알판위를 종묘 묘내의 중앙에 북향하여 설치한다. 이강공의 자리는 문밖에 북향하여 설치한다. 종친 및 참반원의 자리는 묘정에 겹줄로 북향하여 설치한다. 전사는 왕전하의 전알판위를 영녕전 전내의 중앙에 북향하여 설치한다. 이강공의 자리는 문밖에 설치한다. 종친 및 참반원의 자리는 전정에 북향하여 설치한다.
처음 어가가 재전에 이르렀을 때, 종친 및 참반원은 들어가 묘정으로 나아간다. 이강공은 면복을 갖추고서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찬시가 재전 앞에 이르러서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나온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동문 밖에 이르러 무릎 꿇고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들어가 판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찬시가 무릎 꿇고 국궁사배흥평신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도 같다.〈찬의가 역시 창한다〉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들어가 묘내에 이르러서 봉심한 후에, 차례로 각실에 이르러 봉심하는데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성생위에 이르러서 제기를 점검하는데,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도로 동문 밖으로 나가 영녕전에 이른다.〈왕전하가 만약 여를 타고서 영녕전에 이른다면, 찬시가 여를 타고 내리고 규를 드리고 규를 놓는 것을 계청하고 묘 남문 밖에서 여에서 내릴 것을 계청하는 것도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동문을 거쳐 들어가 판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이강공은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종친 및 참반원은 들어가 묘정으로 나아간다. 찬시가 무릎 꿇고서 국궁사배흥평신할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이강공 이하 자리에 있는 자는 같다.〈찬의가 역시 창한다〉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전내를 봉심하는데, 모두 종묘 봉심 의례와 같다. 제기를 점검하는 것 역시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도로 재전 앞에 이른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놓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가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왕전하는 재전으로 들어가 면복을 벗는다. 이강공은 차로 나아간다. 제향관 및 배향관은 재전의 남쪽으로 나아간다. 찬의가 품지하여 하교한다. 뭇 관원은 각각 차로 나아가 숙위하는데, 정해진 대로 한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明成太皇后神主詣宗廟儀)」

“그날에, 신주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가 끝나면, 섭사복정은 여연을 내놓는다. 산선과 의장 시위 향정 등은 경효전 외문 밖에 진설한다. 섭사복정은 요여를 문밖에 내놓는다.〈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산선 및 교명책보요여는 뜰에다 진설하고 또 신연을 중문 밖에 남향하여 내놓는다. 의장의 배설은 식대로 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동구 밖의 시립위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거둥할 시간에 되면, 섭통례는 들어가 문밖에 이르러 북향하여 무릎 꿇고 신좌에서 내려와 여를 타고 부묘할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 전사가 교명책보를 받들어 집사에게 주어 요여에 둔다. 다음으로 전사가 궤를 받들어 여에 놓는다. 궁위령이 신주궤를 받들어 궤 앞에 안치하고 협시하여 중계로 내려온다. 산선과 시위는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섭통례가 연 앞에 이른다.〈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연에 오를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전사가 궤를 연에 놓는다. 궁위령이 신주궤를 받들어 궤 앞에 안치한다. 섭통례가 무릎 꿇고서 출발할 것을 계청한다. 신연이 움직인다.〈고취는 진작한다〉 종척 및 찬시가 따른다.〈교명책보요여가 앞서 간다〉 산선과 시위는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신연이 동구 밖에 이른다. 종척 및 참반원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하고 차례로 시위하여 종묘 대문 밖에 이른다.〈고취는 그친다. 먼저 도착한 종친 및 참반원은 지영하는데, 정해진 대로 한다〉 섭사복정은 요여를 신연 앞에 내놓는다.〈임시로 욕석을 진설한다〉 섭통례가 나아가 신연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연에서 내려 여에 오를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무릇 오르내릴 때에는 원만(園幔)을 설치하는데, 매양 이와 같다〉 궁위령이 신주궤를 받들어 여에 안치한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정문을 거쳐 들어간다.〈왕전하는 차에서 나와 지영하는데, 의례대로 한다〉
종묘 남문 밖의 악차 앞에 이른다. 섭통례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들어갈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 궁위령이 신주궤를 받들어 황제 신주의 왼쪽에 안치한다.〈무릇 오르내릴 때 궁위령이 주렴을 마는데, 매양 이와 같다〉 교명책보를 받들어 악차 안에 둔다.〈모두 상이 있다〉 산선 및 의장은 모두 악차 앞에서 좌우로 나누어 진열한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친림하여 희생을 점검하는 의절(親臨省牲儀)」

“제향 하루 전에, 묘사 및 전사는 각각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묘전의 안팎을 소제한다. 전사관은 제기위를 종묘와 영녕전 당 위의 동측 계단 북쪽에 설치한다.〈모두 자리를 깐다〉
그날에, 왕전하는 출궁하여 종묘에 이르러 재전으로 들어간다. 묘사와 전사 및 집사자는 제기를 들여다 자리에 진열하고 건개(巾盖)를 덮어놓는다. 집준과 축사, 재랑은 모두 흑단령으로 묘의 전내에 이르러 각각 준소에 선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 재전에서 나와 전알례를 행하고 묘내를 봉심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제기위에 이르러서 깨끗이 씻었는지를 점검한다. 집사자가 멱을 들고 깨끗하다고 아뢴다.
제기 점검이 끝나면, 왕전하는 곧 영녕전에 이르러 전알례를 행하고 전내 봉심 및 제기 점검은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재전으로 돌아간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의절(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儀)」

“제향 3일 전에, 회계과에서는 소차를 묘의 조계 동쪽에 서향하여 설치하고, 찬시의 차를 재전의 뒤에 남향하여 설치한다. 제향관 및 종척의 차를 재방 내에 설치하며, 배향관의 차는 그 앞에 설치하는데, 모두 북향한다.
제향 2일 전에, 묘사는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묘의 안팎을 소제한다. 회계과에서는 찬만을 동문 밖에 설치한다. 전악은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등가의 악을 당 위의 앞기둥 사이에 진설하고, 헌가를 묘정에 진설하는데, 모두 북향한다.
제향 1일 전에, 집례는 왕전하의 판위를 묘내의 중앙에 조금 동쪽으로 북향하여 설치하고, 음복위를 앞기둥 바깥에 동쪽 가까이 서향하여 설치한다. 찬자는 아헌관과 종헌관, 진폐찬작관, 천조관, 전폐찬작관, 공신헌관의 자리를 조계 동남쪽의 도 남쪽에 설치한다. 집사자의 자리는 그 뒤에 자리를 달리하며 모두 겹줄로 서향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집례의 자리는 둘인데, 하나는 당 위의 앞기둥 바깥이며 하나는 당 아래인데, 모두 동쪽 가까이에서 서향한다. 찬자는 당하집례의 뒤에서 조금 남쪽에 서향하며, 협률랑의 자리는 당 위의 앞기둥 바깥에 서쪽 가까이에서 동향하고, 전악의 자리는 헌현의 북쪽에서 북향한다. 배향관의 자리는 묘문 내에 자리를 달리하여 겹줄로 북향하여 설치한다. 문외위를 설치하는데, 제향관은 동문 바깥의 도 남쪽이며, 종친은 향관의 동쪽에서 조금 남쪽이고, 배향관은 동서의 문 바깥에 자리를 달리하여 겹줄로 북향한다. 왕전하의 망료위는 예감의 남쪽에서 북향하여 설치한다. 집례와 찬자, 대축은 동쪽인데 겹줄로 서향하고 북쪽이 윗자리이다.
제향일에 행사하기 전, 대축은 그 속료를 거느리고 실을 열어 신악과 포연을 정돈하고 먼지를 떨어내며 궤를 설치하는데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전사관과 묘사는 각각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들어가 축판 각 하나를 각실 신위의 오른쪽에 올린다.〈각각 점이 있다〉 폐비 각 하나는 각실 준소에 진설한다. 향로와 향합 및 촉을 신위 앞에 진설한다. 다음으로 제기를 진설하는데, 식대로 한다. 실마다 찬반 각 하나를 준소의 점 위에 진설한다. 노탄(爐炭)은 앞기둥 사이에 갖다 놓는다. 모혈반과 간료(肝膋), 등(㽅), 소변, 서직변 각 하나를 그 뒤에 진설한다. 복주작〈점이 있다〉과 조육조 각 하나를 제1실의 준소에 진설한다. 또 제1실의 조 하나를 찬만 안에 진설한다. 배향공신 위판을 묘정의 동쪽에 서향하여 진설하는데, 북쪽이 윗자리이다. 제기를 진설하는데, 식대로 한다.
어세는 조계의 동남쪽에 북향하여 진설한다.〈관세가 동쪽, 작세가 서쪽이다. 반이가 있다〉 뢰는 세의 동쪽에 있고 국자를 넣어놓는다. 비는 서남쪽에 있는데, 수건을 넣어놓는다.〈작세의 비 같으면, 또 찬과 작을 넣어놓는다. 점이 있다〉 아종헌의 세는 또 동남쪽에 있는데, 모두 북향하며, 모두 뢰가 세의 동쪽에 있으며 국자를 넣어놓는다. 비는 세의 서남쪽에 있는데, 수건을 넣어놓는다.〈만약 작세의 비라면, 또 작을 넣어놓고 점이 있다〉 또 공신헌관의 세를 신위의 남쪽에 북향하여 진설한다. 뢰는 세의 동쪽에 있으며, 국자를 넣어놓는다. 비는 세의 서남쪽에 있으며, 수건과 작을 넣어놓는다. 제집사의 관세는 아종헌 세의 동남쪽에 북향하여 진설한다.
집준뢰비멱자의 자리는 준뢰비멱의 뒤에 설치한다. 유사는 고종태황제 신주의 부알욕위를 묘내의 중앙에 조금 서쪽으로 북향하여 설치한다.〈명성태황후의 부알욕위는 동쪽에 있다〉
○ 부알향일 축시 전 5각에,〈행사는 축시1각을 사용한다〉 대축은 그 속료를 거느리고서 실을 열어 신악과 포연을 정돈하고 먼지를 떨어낸다. 궤를 진설하는데,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전사관과 묘사는 찬구를 들여다 채운다.
3각 전에, 제향관 및 배향관은 각각 그 옷을 입는다.〈향관은 제복, 배향관은 조복 및 흑단령으로 한다〉 배향관은 모두 문외위로 나아간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 동문으로 들어가 먼저 계단 사이에 있는 악현 북쪽의 배위로 나아가서 북향하여 사배한다. 마치면, 각자 자리로 나아간다. 전악은 공인과 이무를 거느리고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문무는 들어가 악현의 북쪽에 정렬하고, 무무는 악현 남쪽의 도 서쪽에 선다〉 배향관은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아헌관과 종헌관, 제향관은 모두 동문 밖의 자리로 나아간다. 전사관과 대축, 축사, 재랑, 묘사, 협률랑, 봉조관, 집준뢰비멱자는 들어가 악현 북쪽의 배위로 나아가 겹줄로 북향하는데, 서쪽이 윗자리이며 정해진 자리에 선다.
집례는 ‘사배’라 말한다. 찬자는 전해 창한다.〈무릇 집례는 말하고 찬자는 모두 전하여 창한다〉 전사관 이하는 모두 사배한다. 마치면, 제집사는 관세위로 나아가 관세한다. 마치면, 각자 자리로 나아간다.
1각 전에, 아헌관과 종헌관, 진폐찬작관, 천조관, 전폐찬작관, 공신헌관은 들어가 자리로 나아간다. 묘사와 대축, 궁위령은 올라가 제1실에 이르러 들어가서 감실을 연다. 대축과 궁위령은 신주를 받들어 내와 신좌에 안치한다.〈신악 안에 이르러 궤 뒤에서 궤를 열어 신좌에 진설하고 황저건을 덮는데, 서쪽이 윗자리가 된다〉 차례로 각실에 이르러 받들어 내오는데,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재랑은 작세위에 이르러서 찬을 씻고 찬을 닦으며 작을 씻고 작을 닦는다. 마치면, 비에 넣고 받들어서 태계에 이른다. 제축사는 각각 계단 위에서 맞이해 취하여 준소의 점 위에 놓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올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나온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동문 밖에 이른다. 예의사는 무릎 꿇고 규를 들 것을 계청한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정문으로 들어가〈시위와 응당 들어가지 못하는 자는 문밖에서 멈춘다〉 판위에 이르러 북향하여 선다.〈정해진 자리에 설 때마다 예의사는 물러나 왼쪽에 부복한다〉
처음 왕전하가 장차 문을 들어올 때, 섭통례는 나아가 악좌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굻고 신좌에서 내려와 여에 올라 부알할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전사는 궤를 받들어 여에 놓는다. 대축은 고종태황제 신주궤를 받들고 궁위령은 명성태황후 신주궤를 받들어, 궤 뒤에 안치한다. 마치면, 집례〈당하집례〉는 나가 신여를 인도하여 문에 이른다. 산선 및 의장은 문밖 좌우에서 멈추어 정렬한다.〈시위자는 모두 물러간다〉 집사자는 신여를 모시고 정문으로 들어가 태계로 올라가서 부알위 뒤의 욕위〈임시로 진설한다〉에 놓는다. 대축은 고종태황제 신주궤를 받들고 궁위령은 명성태황후 신주궤를 받들어 부알위에 남쪽 가까이 안치하여 궤를 열고 신주를 받들어 내어 욕위에 안치한다. 마치면, 섭통례는 욕위의 서쪽으로 나아가 북향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오늘 길한 날에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합사하고자 알현하나이다’라고 아뢰어 말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난다.
조금 있다가 섭통례는 욕위의 서쪽으로 나아가 동향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 올라 부향할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물러나서 내려가 본 열로 나아간다. 대축은 나아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고종태황제 신주를 받들어 여에 안치한다. 궁위령은 나아가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명성태황후 신주를 받들어 여에 안치한다.〈그 궤의 덮개도 역시 여 위의뒤에 가까이 놓는다〉 대축은 인도하여 신실에 이른다.〈응당 연관된 악장(幄帳) 등 물건은 유사가 먼저 만들어 실 안에 진설한다〉 궁위령은 명성태황후 신주의 궤를 받들어 신좌에 놓는다. 대축은 고종태황제 신주의 궤를 받들어 신좌에 놓는다. 궁위령은 먼저 명성태황후 신주를 받들어 신좌에 안치하고 황저건을 덮는다. 대축은 고종태황제 신주를 받들어 신좌에 안치하고 황저건을 덮는다. 묘사는 그 속료를 거느리고 각각 교명 및 책보를 받들고 들어가 안에 놓는다. 다음으로 선과 개를 받들어 나누어서 좌우에 진설한다. 그 요여는 동계로 내려가 동문을 거쳐 나간다.〈공신위판 집사자는 받들고 들어가 뜰의 끝자리에 안치한다. 독교서관은 동향하여 교서를 읽고, 마치면 물러난다〉
신관. 집례는 예의사는 행사하실 것을 계청하시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무릎 꿇고서 ‘유사가 삼가 갖추었으니 행사하실 것을 청합니다’라고 계한다. 협률랑은 무릎 꿇었다가 부복하고서 휘를 들고 일어난다. 공인은 축을 친다. 헌가는 보태화 악장을 연주한다. 보태화 춤을 춘다. 음악을 8성 연주한다. 집례는 ‘사배’라 말한다. 예의사는 국궁사배흥편신하실 것을 계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사배한다.〈찬자는 역시 창한다. 먼저 절한 자는 절하지 않는다〉 음악은 9성이다. 협률랑은 휘를 눕힌다. 공인은 어를 친다. 음악은 그친다. 찬시는 관세위에 이르러 관세한다. 마치면, 시위로 돌아간다. 진폐찬작관과 전폐찬작관은 관세위에 이르러 관세한다. 마치면, 조계로 올라가 제1실의 준소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집례는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신관례를 행하시오’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관세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규를 꽂을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꽂는다.〈꽂는 것이 불편할 것 같으면 찬시가 이어 받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서 주전자를 취해다가 일어나 물을 따른다. 또 찬시는 무릎 꿇고 대야를 취하여 물을 붇는다. 왕전하는 손을 씻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 광주리에 있는 수건을 취하여 바친다. 왕전하는 손을 닦는다. 마치면, 찬시는 수건을 받아서 광주리에 담는다. 예의사는 규를 드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든다. 예의사는 왕전하는 인도하여 제1실의 준소에 이르러 서향하여 선다. 등가는 보태화 악장을 연주한다. 보태화 춤을 춘다. 집준자는 보자기를 든다. 진폐찬작관은 울창주를 따른다. 찬시는 찬에다 울창주를 받는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신위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무릎 꿇고서 규를 꽂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무릎 꿇고서 규를 꽂는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무릎 꿇는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찬시 1인은 향합을 받들고 1인은 향로를 받들고서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세 번 향을 사르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세 번 향을 사른다. 찬시는 향로를 상에 올린다. 찬시는 찬을 진폐찬작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은 찬을 받들어서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찬을 들고서 강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찬을 들고서 강신한다. 마치면, 찬을 전폐찬작관에게 준다. 전폐찬작관은 받아서 대축에게 준다. 찬시는 폐비를 진폐찬작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은 폐를 받들어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폐를 들어서 폐를 올릴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폐를 들어 폐를 올리고 폐를 전폐찬작관에게 주어 상에 올린다.〈향과 찬, 폐를 바치는 것은 모두 동쪽에서 서향하며, 향로를 올리고 찬을 받으며 폐를 올리는 것은 모두 서쪽에서 동향한다. 작을 바치고 올리는 것은 이것에 준한다〉 예의사는 규를 들고서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들고서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문을 나간다. 다음으로 각 실에 이르러 향을 사르고 울창주로 강신하며 폐백을 올리는 것은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등가는 그친다. 진폐찬작관과 전폐찬작관은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자리로 돌아간다. 등가가 그칠 때를 당하여 제축사는 앞 기둥 사이에서 각각 모혈반과 간료등을 받들고서 모두 들어가 신위 앞에 올린다.〈모혈반은 등의 뒤이며, 간료등은 변의 왼쪽이다〉 제축사는 모두 간을 취하여 문을 나가서 노탄에 태우고 준소로 돌아간다.
궤식. 왕전하가 이미 올라가 강신했을 때, 전사관은 나가서 진찬자를 거느리고 신주(神廚)에 이르러서 솥에서 비(匕)로 우생(牛牲)을 들어올려 솥 하나에 담는다. 다음으로 양을 들어올려 솥 하나에 담고, 다음으로 시를 들어올려 솥 하나에 담는다.〈실마다 우양시는 각각 솥 하나이다〉 모두 경을 끼우고 멱을 덮어서 축사가 마주 들고 들어가 찬만 안에다 진설한다. 천조관은 나와서 찬소에 이른다. 봉조관은 따라와서 왕전하의 강신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마치면, 자리로 돌아간다. 집례는 ‘제찬을 올리시오’라고 말한다. 축사는 경(扃)을 빼서 솥의 오른쪽에 끼운다. 보자기를 걷고 비와 필을 솥에 넣는다. 전사관은 비로 우생을 들어 생갑에 담고, 차례로 양생과 시생을 들어 각각 생갑에 담는다.〈실마다 우양시 각각 한 갑이다〉 천조관은 제1실의 조를 받들고 봉조관은 각각 생갑을 받든다. 전사관은 제찬을 인도하여 정문으로 들어간다. 조가 처음 문을 들어갈 때, 헌가는 풍안지악을 연주한다. 제축사는 모두 나아가서 모혈반을 거두고 조계에서 재랑에게 주고 나간다. 제찬이 태계에 이르면, 제대축은 계단 위에서 맞이해 인도한다. 천조관은 제1실의 신위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무릎 꿇고 올리는데, 먼저 우생을 올리고 다음으로 양생을 올리며 다음으로 시생을 올린다.〈제대축이 올리는 것을 돕는다〉 올리기를 마치면, 생갑의 뚜껑을 연다. 다음으로 각 실에 이르러서 받들고 올리는 것은 모두 위의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음악은 그친다. 천조관 이하는 조계로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제대축은 각각 소(蕭)와 서(黍), 직(稷)을 취하여 기름에 담궜다가 노탄에 태우고 준소로 돌아간다.
진폐찬작관과 전폐찬작관은 올라가 제1실의 준소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집례는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초헌례를 행하시오’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제1실의 준소에 이르러서 서향하여 선다. 등가는 보태화지악을 연주하고 보태화지무를 춘다. 집준자는 보자기를 걷는다. 진폐찬작관은 예제를 따른다. 찬시 2인은 작으로 술을 받는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신위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무릎 꿇고서 규를 꽂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무릎 꿇고서 규를 꽂는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무릎 꿇는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찬시는 작을 진폐찬작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은 작을 받들고서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작을 들어 작을 올리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작을 들어 작을 올리고, 작을 전폐찬작관에게 주어 신위 앞에 올린다. 찬시는 부작(副爵)을 진폐찬작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은 작을 받들어서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작을 들어 작을 올리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작을 들어 작을 올리고 작을 전폐찬작관에게 주어 황후 신위 앞에 올린다. 예의사는 규를 잡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무릎 꿇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잡고 부복했다가 일어나 조금 물러나서 북향하여 무릎 꿇는다. 음악은 그친다. 대축은 신위의 오른쪽으로 나아가 동향하여 무릎 꿇고 축문을 읽는다. 마치면, 음악은 연주한다. 예의사는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찬자가 역시 창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문을 나가서 차례로 각 실에 이르러서 작헌하는데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음악은 그친다. 진폐찬작관과 전폐찬작관은 모두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자리로 돌아간다. 예의사는 소차로 들어가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를 인도하여 장차 소차에 이를 때에, 규를 놓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왕전하는 소차로 들어간다. 주렴을 내린다. 보태화지무는 물러가고 향만년지무가 나아간다.
처음 왕전하가 장차 자리로 돌아갈 때, 집례는 ‘아헌례를 행하시오’라고 말한다. 아헌관은 관세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홀을 꽂으라고 말한다. 아헌관은 손을 씻고 손을 닦는다. 마치면, 홀을 잡으라고 말한다. 아헌관은 조계로 올라가 제1실의 준소 앞에 이르러서 서향하여 선다. 헌가는 향만년지악을 연주하고 향만년지무를 춘다. 집준자는 보자기를 걷고 앙제를 따른다. 집사자 2인은 작으로 술을 받는다. 아헌관은 신위 앞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무릎 꿇고 홀을 꽂으라고 말한다. 집사자는 작을 아헌관에게 드린다. 아헌관은 작을 들어 작을 올리고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신위 앞에 올린다. 집사자는 부작을 아헌관에게 드린다. 아헌관은 작을 들어 작을 올리고 작을 집사자에게 주어 황후 신위 앞에 올린다. 홀을 잡고서 부복했다가 평신하라고 말한다. 아헌관은 문을 나가서 차례로 각 실에 이르러 작헌하는데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음악은 그친다.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처음 아헌관이 올리기를 장차 마칠 때, 집례는 ‘종헌례를 행하시오’라고 말한다. 종헌관의 행례는 모두 아헌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처음 종헌관이 이미 올라갔을 때, 배향공신 헌관은 관세위에 이르러서 홀을 꽂고 손을 씻고 손을 닦는다. 마치면, 홀을 잡고서 준소에 이른다. 집준자는 보자기를 걷고 술을 따른다. 집사자는 작으로 술을 받는다. 헌관은 신위 앞에 이르러서 동향하여 선다. 홀을 꽂는다. 집사자는 작을 준다. 헌관은 작을 들어 작을 올리고 차례로 올린다. 마치면, 홀을 잡고 자리로 돌아간다.
종헌관이 이미 자리로 돌아갔을 때, 진폐찬작관과 천조관은 조계로 올라가 음복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대축은 제1실의 준소에 이르러서 작에 상준복주(上尊福酒)를 따른다. 또 대축은 조를 가져다가 나아가서 신위 앞에 조육을 덜어놓는다. 집례는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음복위로 나아가시오’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음복위로 가실 것을 계청한다. 주렴을 걷는다. 왕전하는 차에서 나온다. 예의사는 규를 잡을 것을 계청한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잡는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음복위에 이르러 서향하여 선다. 대축은 작을 진폐찬작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은 작을 받들고서 북향하여 무릎 꿇고 바친다. 예의사는 무릎 꿇고서 규를 꽂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무릎 꿇고서 규를 꽂는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무릎 꿇는다. 예의사는 작을 받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작을 받아서 마신다. 마치면, 진폐찬작관은 빈 작을 받아서 대축에게 준다. 대축은 받아서 점에다 돌려놓는다. 대축은 조를 천조관에게 준다. 천조관은 조를 받들어서 북향하여 무릎 꿇고 드린다. 예의사는 조를 받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조를 받아서 찬시에게 준다. 찬시는 조를 받들어서 조계로 내려가 문을 나가서 장시사관에게 준다. 진폐찬작관과 천조관은 내려가 자리로 돌아간다. 예의사는 규를 잡고서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잡고서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부복했다가 일어나 평신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자리로 돌아간다. 집례는 ‘사배’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국궁사배흥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사배한다.
집례는 ‘변두를 거두시오’라고 말한다. 제대축은 들어가 변두를 거둔다.〈거둔다는 것은 변두 각 하나를 옛 자리로 조금 옮기는 것이다〉 등가는 옹안지악을 연주한다. 공신 축사와 재랑은 변두를 거둔다. 거두기를 마치면, 음악은 그친다. 헌가는 흥안지악을 연주한다. 집례는 ‘사배’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국궁사배흥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사배흥평신한다. 자리에 있는 자는 모두 사배한다. 음악은 1성으로 그친다.
집례는 ‘망예하시오’라고 말한다. 집례는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망료위로 가시오’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왕전하를 인도하여 망료위에 이르러서 북향하여 선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서 망료위에 이르러서 서향하여 선다. 제대축은 축과 폐를 취하여 망료위에 이른다. 집례는 ‘태우시오’라고 말한다. 제대축은 폐를 화로에 태운다. 제대축은 또 서직반자를 취하여 흰 띠풀로 묶고 광주리에 축판으로 취하여 서계로 내려와 감에 놓는다. 집례는 ‘묻으시오’라고 말한다. 흙을 반쯤 감에다 넣는다. 묘사는 감시한다.
집례는 ‘예필을 아뢰시오’라고 말한다. 예의사는 무릎 꿇고서 예필을 아뢴다. 왕전하를 인도하여 재전으로 돌아가서 문을 나간다. 예의사는 규를 놓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왕전하는 재전으로 들어가 면복을 벗는다. 아헌관과 종헌관, 제향관은 나간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서 본래의 자리로 돌아간다. 배향관은 차례로 나간다. 제집사는 모두 악현 북쪽의 배위로 돌아가서 정해진 자리에 선다. 집례는 ‘사배’라고 말한다. 제집사는 모두 사배한다. 마치면, 차례로 나간다. 전악은 공인과 이무를 거느리고서 나간다. 묘사와 대축, 궁위령은 신주를 들이는데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집례는 찬자를 거느리고서 악현 북쪽의 배위로 나아가서 사배하고 나간다. 전사관과 묘사는 예찬을 거두고 문을 닫고서 내려와 곧 물러간다. 체천할 시간이 되면, 체천은 의례대로 한다.〈조천의가 있다〉”

【용어해설】
부작(副爵) : 황후 신위 앞에 올리는 술잔.
상준복주(上尊福儀) : 조상신께 처음으로 드린 술이 들어있는 술병의 복주.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장조의황제를 조천하는 의절(莊祖懿皇帝祧遷儀)」

장조는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이다. 고종의 훙서로 순종의 5대조가 되면서 친진하여 종묘에서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기고자 마련한 의주이다.
“제향하는 일을 마치면, 재랑 등은 요여 둘을 장조의황제실 문밖에 내놓는다.〈황제의 여는 서쪽이며, 황후의 여는 동쪽이다. 뒤도 이와 같다〉 의장은 신문 밖에 나누어 배치한다. 종척 및 배향관은 모두 조복 및 흑단령으로 먼저 묘문 안으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 차례로 선다. 찬시는 재전 앞에 이르러서 무릎 꿇고 차에서 나오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면복을 갖추고서 나온다. 찬시는 앞에서 인도하여 동문 밖에 이르러 무릎 꿇고 규를 잡으실 것을 계청한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드린다. 왕전하는 규를 잡는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정문으로 들어가 동계를 거쳐 올라가서 장조의황제실 문밖에 이르러 북향하여 선다.
섭통례는 나아가 문밖에 당도하여 북향하고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신좌에서 내려와 여에 오르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묘사는 교명과 책보를 받들어서 집사자에게 주고, 또 궤를 받들어서 여에 놓는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내갈 때는 황제신주가 먼저 나가고, 들일 때는 황후신주가 먼저 들어간다. 뒤도 이와 같다〉를 받들어서 궤에 안치하고 협시하여 중계로 내려간다. 의장과 시위의 도종은 정해진 의례대로 한다. 종척 및 참반원은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남문을 거쳐 나가고, 차례로 시위한다.
영녕전 남문밖에 이르러 헌경의황후의 신여가 먼저 들어가고 장조의황제의 신여가 뒤이다. 중계를 거쳐서 악차 앞에 이른다.〈기일 전에 회계과에서는 악차를 동협실 문밖에 남향하여 설치한다〉 섭통례는 나아가 헌경의황후의 신여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드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전사는 궤를 받들어서 악차 안에 놓는다. 궁위령은 신주궤를 받들어서 궤 앞에 안치한다. 또 섭통례가 나아가 장조의황후의 신여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악차로 드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전사는 궤를 받들어서 악차 안에 놓는다. 대축은 신주궤를 받들어서 궤 앞에 안치한다.〈서쪽을 윗자리로 한다〉
전사는 전 안에 이르러서 신주탑을 배안한다. 섭통례는 나아가 악차의 신좌 앞에 당도해서 북향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악차에서 나와 신좌에 오르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전사는 궤를 받들어서 신탑에 안치한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신좌에 안치한다. 전사는 그 속료를 거느리고 각각 교명과 책보를 받들어서 들어가 안에 놓고, 다음으로 선과 개를 받들어서 좌우에 나누어 진설한다. 그 요여는 동계로 내려가 동문을 거쳐 나간다. 종척 및 배향관은 도로 묘정으로 나아가 동서로 나뉘어서 차례로 선다.
처음 신여가 중계를 거쳐 장차 내려갈 때,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동계로 내려가 지영위로 나아가서〈회계과에서는 때에 임해 욕석을 동계 아래에 남쪽 가까이 서향하여 진설한다〉 서향하여 선다. 신여가 이르면, 찬시는 무릎 꿇고 국궁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국궁한다. 지나가면 평신하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평신한다. 신여가 남문을 나간다.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동계를 거쳐 올라가 정조선황제실 문밖에 이르러 북향하여 선다. 섭통례는 나아가 문밖에 당도하여 북향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신좌에서 내려와 여에 오르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재랑 등은 요여를 문밖에 내놓는다. 묘사는 궤를 받들어서 여에 놓는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궤 앞에 안치하고 협시한다. 왕전하는 뒤를 따른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악차 앞에 이르러서〈기일 전에 회계과에서는 악차를 서익각에 동향하여 설치한다〉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와 악차에 드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묘사는 궤를 받들어서 악차 안에 놓는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궤 앞에 안치한다.〈남쪽을 윗자리로 한다〉 이하 각 실의 이안은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묘사는 묘 안의 빈 실에 이르러서 올라가 신탑을 받들어서 이하 각 실에 차례에 의거하여 배안한다. 마치면, 섭통례는 나아가 정조선황제 신주의 악차 앞에 당도하여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악차에서 나와 여에 오르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묘사는 궤를 받들어 여에 놓는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궤 앞에 안치하고 협시한다. 왕전하는 뒤를 따른다. 섭통례가 앞에서 인도하여 해당 실의 문밖에 이르러서 부복했다가 무릎 꿇고 여에서 내려 신좌에 오르실 것을 계청하고, 부복했다가 일어난다. 묘사는 궤를 받들어 여에 놓는다. 대축과 궁위령은 각각 신주궤를 받들어서 신좌 앞에 안치한다. 집사자는 각각 교명과 책보를 받들어서 묘사에게 주어 들어가 안에다 놓는다. 다음으로 선과 개를 좌우에 진설하는데 정해진 대로 한다. 이하 각 실은 차례에 의거하여 환안한다. 오르고 받드는 것이 새로 부제할 실에 이르러서는 모두 위 의례대로 한다.
마치면, 찬시가 왕전하를 인도하여 도로 동문 밖으로 나간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놓으실 것을 계청한다. 왕전하는 규를 놓는다. 찬시는 무릎 꿇고 규를 받는다. 찬시가 앞에서 인도하여 재전으로 돌아간다. 종척 및 참반원은 차례로 나간다.”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 「배향공신의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드리는 의절(題配享功臣位版宣敎書致祭儀)」

고종을 부묘함에 따라 선정된 배향공신의 주인집에서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그 신주에 제사하는 의주이다.
“기일 전에, 회계과에서는 사자의 차를 주인집 대문 안의 서쪽에 남향하여 설치하고, 향안 및 교서권치안(敎書權置案)을 사자 차의 안에 진설하며, 궤연을 정당에 진설하고, 향안 및 교서안을 궤연의 왼쪽에 진설한다.
그날에, 향 및 교서가 장차 이를 때, 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나가 대문 안의 길 왼쪽에 서서 국궁하고, 지나가면 평신한다. 집사자는 향 및 교서를 받들어서 임시로 상에다 놓는다. 장차자는 사자를 인도하여 차로 나아간다. 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들어간다. 봉상소관 및 차비관은 상을 받든다. 집사는 요여로 위판을 받들어서 주인집에 이른다.〈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나가 대문 안에서 지영하는데 위대로 한다〉
거안자는 제주안(題主案)을 궤연 앞에 놓는다. 차비관은 위판을 받들어 상 위에 봉안한다. 제주관은 손을 씻고서 서계를 거쳐 당으로 올라가 상 앞에 이른다. 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서계를 거쳐 당으로 올라와 북향하여 부복한다. 제주관은 글씨를 쓴다. 마치면, 내려가 나간다. 차비관은 위판을 받들어 궤연에 봉안한다.〈신주는 왼쪽이며 위판은 오른쪽이다〉 주인은 내려가 뜰의 동쪽에 서서 서향한다.
집사자는 제찬을 들여 궤연 앞에 진설한다. 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나가 사자〈단배〉를 맞이하여 들어간다. 향 및 교서를 받든 자가 먼저 간다. 사자는 동계로 올라가 궤연의 동쪽에 서서 남향한다. 향 및 교서를 받든 자는 향 및 교서를 상에 놓는다. 독교관과 전교관은 서계를 거쳐 당으로 올라간다. 사의가 주인을 인도하여 계단 사이에 서서 북향한다. 사자는 교서가 있다고 말한다. 주인은 무릎 꿇는다. 전교관은 교서를 펼친다. 독교관은 서향하여 읽는다. 마치면, 전교관은 교서를 도로 상에 놓고, 모두 내려가 나간다. 사의는 부복흥사배를 창한다. 주인은 부복흥사배한다.
사자는 향안 앞에 이르러 서서 향을 사르고 술을 올린다.〈연이어 세 잔을 올린다〉 마치면, 사의가 사자를 인도하여 나가 대문 안의 차로 돌아간다. 주인은 나가 대문 안에서 절하여 전송한다. 차비관은 위판을 받들어서 사당에 임시로 봉안한다. 마치면, 나간다.”

【용어해설】
교서권치안((敎書權置案)) : 의식을 거행하기 전에 교서를 임시로 놓아두는 상.
제주안(題主案)) : 글씨를 쓰기 위해 신주를 놓는 상.
독교관(讀敎官) : 교서를 읽는 관원.
선교관(宣敎官 : 교서를 펼치는 관원.
관련문헌
『高宗祔廟主監儀軌』(K2-2218)
집필자
임민혁

고종과 명성황후의 종묘 부묘에 관련된 일체의 사항이 종합 정리된 의궤


원자료제목
표제 祔廟主監儀軌

[내용 및 특징]
이 의궤는 1921년 3월 31일 오전 영시(零時: 24~1시) 30분 고종명성황후종묘에 부묘한 이후 부묘에 관련된 일체의 사항을 종합하여 작성한 의궤이다. 이 의궤는 일제시대에 작성되어 그 내용이나 형식이 조선시대에 비해 현격하게 축소되었다. 부묘를 주관한 기구의 명칭도 조선시대의 부묘도감(祔廟都監)에서 부묘주감(祔廟主監)으로 바뀌었고, 작성된 양도 조선시대의 부묘도감의궤가 7건 또는 9건씩 작성된 것에 비해 단지 1건 만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 유일본이다.
「시일」은 고종명성황후 부묘의 전체 일정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21년 2월 16일 부묘주감(祔廟主監)의 제조(提調)와 낭청(郎廳)이 창덕궁에서 회동하여 고종명성황후의 종묘 부묘를 논의하고 시역(始役) 하였고, 종묘와 효덕전(孝德殿) 그리고 경효전(景孝殿)을 봉심함. 3월 8일 정오(正午)에 경효전의 책보봉과(冊寶封裹), 3월 27일 감실이하 제구배진(諸具陪進), 3월 29일 부묘의(祔廟儀) 연습, 3월 31일 오전 0시 부묘함. 오전 1시 30분에 종묘대제를 친행하고, 오전 6시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를 영녕전에 조천(祧遷)함.
「좌목」은 부묘주감 도제조 이하 각급 관원의 명단이다. 관원의 임명과 해면, 해당 관원의 감원과 이차(移差) 등의 날짜를 밝혀놓았다. 도제조는 민영규(閔泳奎) 1명, 제조는 민영휘(閔泳徽)·민병석(閔丙奭)·윤덕영(尹德榮)·윤용구(尹用求)·김종한(金宗漢)·박용대(朴容大)·이재곤(李載崐)·김춘희(金春熙)·이우면(李愚冕)·조민희(趙民熙) 등 10명, 고문은 박영효(朴泳孝)·이완용(李完用)·이지용(李址鎔)·송병준(宋秉畯)·조동윤(趙東潤)·민영찬(閔泳瓚)·이재완(李載完)·민영달(閔泳達) 등 8명, 도청(都廳)은 이덕주(李德柱)·김령진(金寧鎭)·이기용(李埼鎔)·민홍기(閔弘基) 등 4명, 낭청(郎廳)은 정인환(鄭寅煥)·김용한(金用漢)·김승진(金升鎭) 등 22명, 감조관(監造官)은 심재덕(沈載德)·이원창(李源昶)·이원종(李源鍾) 등 15명과 서기(書記)는 8명 등의 관원이 임명되었다.
「하교급상계」는 1921년 1월 10일부터 3월 31일까지 부묘주감 그리고 이왕직의 보고와 그에 따른 순종의 하교를 시일별로 수록한 것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21년 1월 10일 이왕직 장관(李王職長官) 남작(男爵) 이재극(李載克)이 효덕전(孝德殿) 담제(禫祭)를 치른 후 효덕전, 경효전(景孝殿)을 부태묘(祔太廟)할 때 주감(主監)을 설치하는 날짜에 대해서 아뢰자 순종이 상제(祥祭) 후 설치하라고 하교함. 1월 15일 부태묘(祔太廟) 날짜가 음력 2월 22일로 결정됨. 2월 16일 종묘의 실의 수 논의하고 배향공신과 부묘주감의 관원을 선정함. 종묘에 칠실을 두고 장조의황제(莊祖懿皇帝)의 조천(祧遷)을 결정함. 고종실(高宗室) 배향 공신을 회권(會圈)하여 우의정(右議政) 문익공(文翼公) 박규수(朴珪壽), 우의정 문경공(文敬公) 신응조(申應朝), 행좌찬성(行左贊成) 문정공(文貞公) 이돈우(李敦宇), 참정대신(參政大臣) 충정공(忠正公) 민영환(閔泳煥)을 뽑아 입계함. 2월 19일에는 전례를 참고하여 행사에 들어갈 물품의 종류와 수량에 대해서 아룀. 3월 30일에 효덕전(孝德殿)의 고동가제(告動駕祭)를 행함. 경효전(景孝殿)의 고동가제를 섭행함. 31일에 고종명성황후를 태묘(太廟)의 제 18실에 부묘(祔廟)하였으며, 이어 부묘 대제(祔廟大祭)를 행함 그리고 장조의황제의 신주를 영녕전(永寧殿)으로 조천(祧遷)하여 안신제(安神祭)를 행함
「의주」는 부묘에 관련된 각종 의식절차를 수록하였다. 수록된 의주는 효덕전에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의 친행하는 의절(孝德殿告動駕祭親行儀),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高宗太皇帝神主詣宗廟儀),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明成太皇后神主詣宗廟儀), 친림하여 희생을 점검하는 의절(親臨省器儀), 고종태황제와 명성태황후를 종묘에 합사하는 의절(高宗太皇帝明成太皇后祔廟儀), 장조의황제를 조천하는 의절(莊祖懿皇帝祧遷儀), 배향공신의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드리는 의절(題配享功臣位版宣敎書致祭儀) 등 이다. 효덕전에 어가의 거둥을 아뢰는 제사의 친행하는 의절은 고종 신주가 종묘로 거둥하는 사실을 고종 신령에게 미리 아뢰는 제사를 지내는 절차를 규정해 놓은 의주이다. 효덕전은 고종의 신주를 모신 혼전이다. 고종태황제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과 명성태황후의 신주가 종묘에 이르는 의절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주를 종묘로 모셔오는 의식의 절차를 규정해 놓은 의주이다. 장조의황제를 조천하는 의절은 고종의 훙서로 순종의 5대조가 되면서 친진하여 종묘에서 영녕전으로 신주를 옮기고자 마련한 의주이다. 장조는 영조의 아들인 사도세자이다. 배향공신의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제사를 드리는 의절은 고종을 부묘함에 따라 선정된 배향공신의 주인집에서 위판에 글씨를 쓰고 교서를 선포하며 그 신주에 제사하는 의주이다.
「반차」는 고종명성황후의 신주를 종묘로 모셔오는 행렬을 묘사한 것인데, 효덕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孝德殿祔廟時班次)와 경효전을 부묘할 때의 반차(景孝殿祔廟時班次)가 있다.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주를 종묘에 합사하고자 출궁할 때의 행렬의 차례이다. 그림은 생략하고 각각의 위치에 배치되는 사람의 이름과 의장, 기물명을 기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에 반차도를 제작할 때 각건마다 수용된 물품과 그 수량이 기록되어 있다.
「휘호책보」는 명성황후 옥책 1건과 그에 부속되는 각종 물건 제작에 소용되는 재료와 규격, 옥책문, 옥보의 규격과 재료․보식(寶式) 및 각 부속품의 규격과 재료, 수량 등을 기록하였다. 더불어 옥책(玉冊)·갑(匣)·내함(內函)·흑진칠외궤(黑眞漆外樻)·옥보(玉寶)·보통(寶筒)·보록(寶盝)·주통(朱筒)·배안상(排案床) 등의 채색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책보봉과식」은 옥책과 옥보를 종묘에 봉안하기 위해 옥책과 옥보를 싸고 묶어서 함과 보록에 넣고 근봉하여 배안상에 올려놓기까지의 과정과 방법에 대한 의식절차를 기록하였다.「제주시제구」는 종묘에 봉안할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주에 글을 쓸 때 소용되는 각종 재료를 수록하였다
「감실이하제구」는 종묘의 감실에 부수되는 각종 기물의 종류와 수량을 기록하였다. 더불어 감실(龕室)·신탑(神榻)·답장(踏掌)·보장(寶欌)·이안기(移安機) 내상(內床)·남신문외악차만정골평상면장(南神門外幄次滿頂骨平床面帳)·준소상(樽所床)·목두(木豆)·대생갑(大牲匣)·소생갑(小牲匣)·삼합소생갑(三合小牲匣)·조상(俎床)·식함지개(食函之蓋) 등의 채색 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수리」는 종묘 18실과 19실, 종묘의 외주렴(外朱簾), 영녕전의 외주렴, 어재실의 남문장(南門帳), 종묘 향대청(香大廳)의 문, 공신당의 신장, 경효전의 책보 봉과시의 내외보 등을 수리하는데 들어간 재료와 양을 정리해 기록하였다. 「연여의물」은 고종과 명성황후의 신주를 종묘로 옮겨갈 수레 및 이에 부수되는 각종 의장물을 정리한 것이다. 정연(正輦) 1좌, 평교자 1좌, 신여 2좌, 요여 6좌, 채여 6좌, 향정자 1좌, 삼색촉롱(三色燭籠) 각 1쌍 등을 수리하거나 새로 준비하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을 정리해 놓았다.
「의장」은 부묘시에 소용되는 각종 의장물과 이 의장물을 수선하거나 새로 갖추는데 들어가는 재료의 양과 규격 등에 관해 수록해 놓았다. 쓰이는 의장물은 황룡기·주작기·가구선인기·벽봉기·홍문대기·청룡기·정축기·정묘기·정미기·백택기·용마기·금자기·주작현무청룡백호당·웅골타··가서봉·한필·정·모절·은립과·은횡과·금립과·은장도·금장도·은등자·금등자·은월부·금월부·황개·봉선·작선·황양산·소금부월·수정장·황산선·황일산·황칠교의·황칠각답·은교의·은각답·은관자·은우자·향좌아·장족아 등이다.
「배향신위판」은 배향공신들의 위판 규격과 위판에 글씨를 쓰는 식, 위판을 제작하고 글씨를 쓰는데 소용되는 재료 등을 수록하였다.「배향신교서」는 배향공신인 우의정박규수와 우의정신응조, 좌찬성이돈우, 참정민영환 등에게 개별적으로 내린 교서와 전체적으로 내린 교서를 수록해 놓았다.
「군정인수」는 부묘에 동원된 각종 사람들의 수이다. 경효전에 휘호를 올릴 때(景孝殿上徽號時)는 의장군(儀仗軍) 8명·채여군(彩轝軍) 9명·배안상군(排案床軍) 4명· 등패(等牌) 1명 등 총 22명이 동원되었고 효덕전을 부묘할 때는(孝德殿祔廟時) 의장군(儀仗軍) 71명·삼색촉롱군(三色燭籠軍) 6명·신연군(神輦軍) 20명·신여군(神轝軍) 9명·옥교군(玉轎軍) 12명·향정군(香亭軍) 5명·요채여군(腰彩轝軍) 72명·배안상군(排案床軍) 16명·등패(等牌) 15명·배향신요여군(配享臣腰轝軍) 36명·배안상군(排案床軍) 8명 등 총 270여명이 동원되었다. 이밖에도 경효전을 부묘할 때(景孝殿祔廟時), 조천 및 오실을 이환할 때(祧遷及五室移還安) 등 각 사항마다 동원된 각종 사람들의 수가 개별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묘후소화물종」은 부묘가 끝난 후 태워버린 물건의 종류를 기록하였다. 그 물건의 종류는 죽피방상자(竹皮方箱子)·전공거핵면화(塡空去核綿花)·설면자(雪綿子)·유결황주(維結黃紬) 등이다.
「부중화전어진봉안선원전」은 중화전에 봉안된 고종의 어진을 선원전으로 옮겨 봉안할 때의 의식절차에 관한 기록이다. 도사본(圖寫本)과 준비해야 할 기명, 반차 그리고 날짜순의 계사, 의주 등을 정리해 놓았다. 선원전 각실의 영정을 선원전에 이봉하고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봉안하는 의절(璿源殿各室影幀移奉高宗太皇帝御眞奉安璿源殿儀), 선원전 각실의 영정을 선원전에 이봉하고 고종태황제의 어진을 봉안할 때 왕전하가 지영하는 의절(璿源殿各室影幀移奉高宗太皇帝御眞奉安璿源殿時王殿下祗迎儀), 선원전 작헌례를 친히 행하는 의절(璿源殿酌獻禮親行儀) 등 3종의 의주가 수록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이 의궤는 고종의 장례 기간이 끝난 후 고종명성황후를 종묘에 부묘하면서, 일제치하에 이왕가의 태왕으로 있던 고종과 그의 황후인 명성황후의 부묘에 관련된 각종 의논, 기구, 규격, 종류, 의식절차, 참여자 등을 구체적이면서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특히 이 의궤는 조선시대의 부묘도감에서 작성되던 의궤와 비교하여 명칭, 규모, 내용 등에서 상당한 정도의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조선시대 최고 권력자로의 왕에서 일제시대 한 왕가의 수장으로 존재하던 이왕가의 위상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일제시대에 황실이 왕가로 격하되어 시행된 각종 왕가관련 의식을 보여준다.
주기사항
이왕직실록편찬위원회(李王職實錄編纂委員會)에서 고종순종실록(高宗純宗實錄)을 편찬하기 위해 본 의궤를 이왕직 원고지에 전사한 『고종부묘주감의궤』(K2-2217)와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다.
참고문헌
  • 『한국학자료해제-장서각소장의궤해제』 2권 / 申明鎬 /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 『純祖實錄』附錄
집필자
김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