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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G002+JSK+KSM-WM.1790.1111-20120515.K20154
분류
형식분류고서-일기
내용분류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소장처유형공공기관-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편찬
단체/기관명 감대청
작성지역
지역 한성 (현재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작성시기
연도 1790
월일 00/00 (음)
정보원표기 感戴廳庚戌年日記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27, 가로 : 19.5
판본필사본(筆寫本)
장정선장(線裝)
수량3冊
판식李王職原稿紙
재질종이
표기문자한자
인장
개수형태색깔크기(cm)인문
3李王家圖書之章
비고
[청구기호]

K2-0154

[마이크로필름]

MF35-1319

[기록시기]

1790, 1820, 1883

소장정보
원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중동)

■ 감대청일기(感戴廳日記)

조선시대 국왕의 친위부대인 감대청(感戴廳)에서 기록한 관청일기이다. 본 문헌은 1929년(昭和 4) 7월 15일에서 10월 3일 사이에 이왕직에서 원본을 보고 필사한 복본(複本)이며 제 1권, 제 19권, 제 22권이 묶여 있다. 제 1권은 1790년(정조 14), 제 19권은 1820년(순조 20), 제 22권은 1823년(순조 23)의 내용이다.
각 책의 마지막에 등초(謄抄)와 등초한 내용의 검교(檢校)를 수행한 날짜와 담당자 이름을 기재하였다.
본 일기의 구성형식은 날짜, 날씨, 입직자의 성명, 왕의 거둥과 행선지 및 문안사의 순서로 기술되어 있다. 감대청의 업무와 기능, 조선시대 국왕의 매일 일과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관련문헌
『蓮幕日史』 『感戴廳故事』 『感戴廳憲』 『感戴廳節目』 『感戴廳救弊節目』 『別軍職廳先生案』 『左侍御廳日記』 『右侍御廳日記』 『宣傳官廳日記』
집필자
김은미

조선시대 국왕의 시위(侍衛)기관인 감대청(感戴廳)에서 기록한 관청일기로서 1790년(정조 14), 1820년(순조 20), 1883년(고종 20)분의 기록이다.


원자료제목
표제感戴廳日記

[내용 및 특징]
1820년(순조 20), 1850년(철종 1), 1883년(고종 20)에 작성되었던 감대청(感戴廳)의 관청일기를 1929년 이왕직(李王職)에서 등초(謄抄)한 복본(複本)이다.
1929년(소화 4) 7월 15일에서 10월 3일 사이에 이왕직실록편찬위가 주체가 되어 원본을 수집하여 등초했으며, 원본은 현재는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규장각 소장본 『감대청일기』(奎 13032)는 1책 1790년(정조 14)에서 56책 1895년(고종 32)까지이며 중간에 결질(缺帙)이 많다. 그리고 『感戴廳日史』, 『蓮幕日史』, 『別軍職廳日記』와 같이 표제가 일정하지 않으나 내용은 모두 감대청에서 작성한 1종(種)의 『감대청일기』이다.
장서각 소장본 K2-154는 제 1권, 제 19권, 제22권이 합철되어 있는 형태이다. 그러나 표제가 그렇게 붙어 있을 뿐 실제 내용과 권차가 일치하지 않는다. 작성시기를 살펴보면, 1권은 1850년(철종 1), 19권은 1820년(순조 20), 22권은 1883년(고종 20)이다. 즉 시대순으로 보면 19권, 제 1권, 22권 순이다.
감대청은 국왕의 최측근 친위부대로서 효종 7년(1656)에 창설되었다. 봉림대군(鳳林大君)이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가던 때 호종했던 박배원(朴培元), 오효성(吳孝誠) 등 8장사를 중심으로 ‘別軍’이라는 직함을 주고 설립한 관청이다. 입직·시위·적간의 기능을 고유임무로 하는 국왕의 근밀시위(近密侍衛) 기관이었다. 인원은 처음 8명을 시작으로 영조대에는 30명까지 늘어났지만 대체로 10~20명 사이를 유지 하였다.
감대청의 주요 업무는, 국왕에게 드리는 아침·저녁 문안과 함께 궁중 안팎의 경계 등 국왕의 신변보호 전반에 대한 업무였다. 특히 임금이 거동 할 때 연(輦)을 메는 직무는 반드시 감대청소속의 별군이 해야 하는 고유의 것이었다. 아울러 궁중 내외는 물론 지방의 시정, 능원의 관리에 이르기까지 감시관의 자격까지 수행하였던 적간(摘奸)의 업무가 있었으며 국왕의 신임을 바탕으로 하는 업무가 주가 되었다.
감대청은 흔히 별군직청(別軍職廳)이라고도 불었는데, 이 두 용어의 혼용은 문헌의 명칭에도 반영되었다. 현전하는 『감대청일기』『별군직청일기(別軍職廳日記)』 혹은『연막일사(蓮幕日史)』라는 표제가 붙기도 하였는데 모두 감대청에서 작성한 동일한 일기이다.
갑오개혁 때 감대청시어청(侍御廳)으로 개편되어 대한제국 말기까지 존속하였으며, 『시어청일기(侍御廳日記)』,『좌시어청일기(左侍御廳日記)』,『우시어청일기(右侍御廳日記)』도 『감대청일기』의 연장선상에서 후속의 기록으로 볼 수 있다.
『감대청일기』의 구성형식은 날짜, 날씨, 입직자의 성명, 왕의 거둥과 행선지 및 문안사항이 주요 내용을 이룬다. 때에 따라 적간(摘奸)·봉심(奉審)에 대한 보고, 공마(貢馬) 등 물품 출납, 다른 관아와의 연락 사항이나 본청 관원의 동정 등의 내용이 기록되었다.
내용을 살펴보면, 1권은 '感戴廳庚戌年日記'이라는 제목 아래 1850년(철종 1, 庚戌) 정월 1일부터 12월 30일까지의 일기이다. 일기의 끝에는 '昭和四年七月十五日 鄭琦民'이라고 하여 필사한 날짜와 담당자 이름, '昭和四年九月十六日 檢査 徐晩淳'이라고 하여 필사한 내용을 검사한 날짜와 담당자 이름이 적혀 있다. 19권은 '庚辰年日記'라는 제목 아래 1820년(순조 20, 庚辰) 정월 초하루부터 12월 30일까지의 일기이다. 마찬가지로 마지막에 '昭和四年 九月十四日 檢閱李準聖', '昭和四年七月十五日 玄槶' 라고 하여 필사와 검열을 수행한 날짜와 담당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22권은 '癸未正月'이라는 내용을 시작으로 1883년(癸未, 고종 20) 정월부터 12월 30일까지의 일이 적혀 있으며, '昭和四年 十月十三日 校訂閔泳直', '昭和四年八月三日 玄槶'라고 필사 및 교정 날짜와 담당자 이름이 기재되어 있다.
1권의 檢査를 담당한 서만순(徐晩淳, 1870~1950)은 1891년(고종 28) 과거급제를 시작으로 1908년 규장각직각(奎章閣直閣)을 지내고 이후 일제 시대에 중추원참위(中樞院贊議)를 지냈다. 원궁내부비서원승(元宮內府祕書院丞)의 신분으로 『高宗實錄』『純宗實錄』의 감수위원을 맡았다. 19권의 검열인 이준성 또한 『高宗實錄』『純宗實錄』의 편찬 보조 위원으로 확인된다.
19권과 22권의 필사자 현귀는 국비유학생으로 東京慶應義塾, 東京高等工業學校를 졸업 하였고 귀국 후 官立農商工學校敎官을 역임한 인물이다.
관련문헌으로는 『감대청고사(感戴廳故事)』, 『감대청헌(感戴廳憲)』, 『감대청절목(感戴廳節目)』, 『감대청구폐절목(感戴廳救弊節目)』, 『별군직청선생안(別軍職廳先生案)』,『좌시어청일기(左侍御廳日記)』,『우시어청일기(右侍御廳日記)』가 있으며 모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자료적 가치]
감대청에서 수행하는 매일의 업무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어 감대청의 업무와 기능, 조선시대 국왕의 매일 일과를 살펴볼 수 있는 자료이다. 무엇보다 본 문헌은 원본이 아닌 등초본이지만 19권 1820년(순조 20)과 22권 1883년(고종 20) 부분은 규장각소장 원본이 결질(缺帙)이므로 장서각 소장본이 유일본이다. 따라서 『감대청일기』의 결실된 내용을 복원 할 수 있는 자료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 『장서각소장 왕실도서 해제』1 / 한국학중앙연구원, 2006
  • 「일제하 이왕직과 이왕가 족보」 / 신명호 / 『한국학대학원논문집』,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1996
  • 「朝鮮後期 別軍職의 組織과 그 活動」 / 張弼基 / 『사학연구』제40호 한국사학회, 1989
  • 『感戴廳日記』,『宣廳日記』해제 / http://library.snu.ac.kr
집필자
1차 집필자 : 전관수, 2차 집필자 : 김은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