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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CIG002+JSK+KSM-WM.1923.1100-20140415.K23607
분류
형식분류고서-일기
내용분류정치/행정-조직/운영-일기
작성주체 - 기관단체
역할 편찬
단체/기관명 이왕직
작성지역
지역 서울 (현재주소 : 서울)
작성시기
연도 1923
월일 10/05
정보원표기 대정 12년
형태사항
크기(cm) 세로 : 24.5cm, 가로 : 16.9cm
판본필사본(筆寫本)
장정선장(線裝)
수량1冊 89張
판식 李王職罫紙, 四周雙邊, 有界, 半葉 10行 字數不定, 上赤魚尾.
재질종이
표기문자한자, 일본어
인장
개수형태색깔크기(cm)인문
타원형적색「篠田」 等 個人印章
비고
[청구기호]

K2-3607

[마이크로필름]

MF16-310

[기록시기]

1923.10.05.~1925.08.19.

소장정보
원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현소장처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현재주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하오개로 323번지)

■ 감사일지(監査日誌)

이 일기는 이왕직(李王職)에서 1923년(순종 16) 10월 5일부터 1925년(순종 18) 8월 19일까지 2년동안 창덕궁(昌德宮)·비원(秘苑)·창경원(昌慶苑) 등의 건물 상태나 관리상태 등을 점검한 사실을 기록한 관리일기이다.
이 자료는 고종 승하후 인원이 감축된 이왕직에서 창덕궁 감사가 실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아울러 이 일기는 일제하의 창덕궁 내부 구조 및 내부 시설들을 확인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집필자
1차 집필자 : 신명호, 2차 집필자 : 권석창

이왕직(李王職)에서 1923년(순종 16) 10월 5일부터 1925년(순종 18) 8월 19일까지 2년동안 창덕궁(昌德宮)·비원(秘苑)·창경원(昌慶苑) 등의 건물 상태나 관리상태 등을 점검한 사실을 기록한 관리일기이다.


원자료제목
표제監査日誌

[내용 및 특징]
이 일기는 이왕직(李王職)에서 1923년(순종 16) 10월 5일부터 1925년(순종 18) 8월 19일까지 2년동안 창덕궁(昌德宮)·비원(秘苑)·창경원(昌慶苑) 등의 건물 상태나 관리상태 등을 점검한 사실을 기록한 관리일기이다. 다만 일기 내용을 통해 미루어 봤을 때 감사는 불규칙적으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1923년 10월간의 감사 날짜를 보면 5일 금요일, 8일 월요일, 10일 수요일, 14일 월요일, 16일 화요일, 17일 수요일, 20일 토요일, 22일 월요일, 25일 목요일, 29일 월요일이었다.
이 일기의 편자인 이왕직은 일제강점기 때 왕실과 관련된 사무 일체를 담당하던 기구로서 1910년 망국(亡國)과 함께 대한제국황실(大韓帝國皇室)이 이왕가(李王家)로 격하됨에 따라 기존의 황실 업무를 담당하던 궁내부(宮內府)를 계승하여 설치되었다.
이 일기는 1책으로 된 필사본이다. 책 표지의 오른쪽 상단에 ‘大正十二年 十月’이란 글이 적혀있고, 중앙에는 ‘監査日誌’라는 표제가, 왼쪽 상단에는 ‘甲’이라 되어 있다. 그리고 책의 마지막장을 통해 1972년 9월에 장서각에서 재장(再裝) 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일기는 한자와 일본어로 작성되었다.
용지는 이왕직 판심제가 있고 적색으로 인쇄된 이왕직괘지(李王職罫紙)가 사용되었다. 용지는 한 면에 가로 10행으로 되어있다.
본문의 서술형식은 하루의 기사를 5가지로 나누어 행을 달리하여 기록하였다. 첫 번째로 연월일(年月日)과 요일(曜日)을 기록하였고, 두 번째로 감사원(監査院)의 성명을 기록하고, 그 아래에 해당 감사원의 인장을 찍었다. 일기에 기재된 감사원으로는 池尻萬付夫·강성국(姜聲國)·윤완구(尹完求)·片淵梅次郞·김충진(金忠鎭)·이겸성(李謙聖)·박순회(朴淳會)·宮出由太郞·平田武夫·이응훈(李應勳)·丹羽賢太郞 등이 있다. 이들은 이름 외에도 직책이 씌여져 있는 경우도 있는데, 이들의 직책은 대개 속(屬)이나 기수(技手)였다.
세 번째는 감사시각(監査時刻)을 기록하여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점검하였는지 기록하였다. 네 번째는 감사개소(監査個所)로, 즉 점검한 장소를 구체적으로 기재하였다. 그 장소는 창덕궁의 각처로서 각처의 숙직실을 비롯하여 낙선재·이왕직청사·청사부속건물·위생실·도서실·장유고(醬油庫)·내전일대·인정전 내외·관물헌 내외·통역관실 등이다.
다섯 번째는 기사(記事)로, 감사한 곳의 상태를 비교적 자세히 기록하고, 점검 결과 조치가 필요한 사항도 함께 적었다. 이 중 감사시각과 감사개소 그리고 기사의 하부항목은 글 앞에 ‘一.’을 기재하였다. 또한 일기의 본문 상단에 차관(次官)·감사위원(監査委員)·감사주임(監査主任)의 직명과 인장이 있다.
작성된 일기의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먼저 첫 기사인 1923년 10월 5일 금요일의 감사원은 池尻萬付夫로, 오후 1시 30분부터 4시 20분까지 창경원 안의 각 처를 점검했다. 그 내용은 농부힐소(農夫詰所)의 판자(板子)에 문제가 있다는 것, 수위숙직실(守衛宿直室)의 온돌에 누수가 있다는 것, 기타 도서분실(圖書分室)과 원정힐소(苑丁詰所) 등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것 등이다.
다음으로 1923년 10월 8일 월요일에 감사원은 강성국으로, 오후 1시부터 오후 2시까지 낙선재(樂善齋) 외곽과 정감힐소(庭監詰所)를 점검했다. 그 내용은 두 가지로 첫 번째는 ‘낙선재 동측 동물원 경계 담가에 사용하지 않는 변소 2개에 볏짚과 건초 등이 산재해 있는데, 이 부근에 낡은 목재를 반출입하는 인부들이 피고 난 담배를 버려 소제(掃除)를 요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정감힐소 출입구 남측 온돌이 움직이고, 돌이 파손되어 수선을 요한다는 것’이다. 같은 날에 감사원 平田武夫가 오후 8시 15분부터 9시 20분까지 청사(廳舍)와 청사부근 부속 건물을 점검하기도 했다. 대개 감사시각은 하루에 한차례인 경우가 많으나, 이처럼 하루에 두차례인 경우도 있었다.
이 일기는 이왕직의 감사실에서 관장했는데, 감사실은 이왕직 차관에 직속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유는 일기에 도장을 찍는 결재 인원이 감사주임, 감사위원, 차관이기 때문이다. 이왕직에는 장관(長官), 차관, 사무관(事務官), 찬시(贊侍), 전사(典祀), 전의(典醫), 기사(技師), 속, 전사보(典祀補), 전의보(典醫補), 기수 등이 배치되었는데, 이 중에서 감사원의 직책을 수행한 것은 속과 기수이다. 속은 서무에 종사했고, 기수는 건축, 토목 및 원예의 기술에 종사했다. 『순종실록부록(純宗實錄附錄)』의 1923년 2월 24일, 3월 1일 기사를 살펴보면 당시의 이왕직 장관으로 민영기(閔泳綺)가, 차관으로 시노다 지사쿠[篠田治策]이 재직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왕직의 구성은 『순종실록부록』 1915년 3월 24일자에 기재된 ‘이왕직직원사무분장규정(李王職職員事務分掌規程)’을 살펴보았을 때, 기존의 5係(庶務係, 會計係, 掌侍係, 掌祀係, 掌苑係)체제가 1司 6課(掌侍司, 庶務課, 會計課, 主殿課, 祭祀課, 農事課, 掌苑課)체제로 바뀌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조직은 1916년 6월 10일 의식과(儀式課)의 설치(1司 7課), 1918년 6월 농사과의 폐지와 주전과가 영선과(營繕課)로 개칭된 것을 제외하면 거의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1919년 고종(高宗)의 승하(昇遐) 이후 이왕직의 기구와 직원은 대폭 축소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 4월에 많은 직원을 감축한데 이어, 11월에는 기구를 장시과, 서무과(부속 掌苑室), 회계과, 예식과 등 1司 3課로 대폭 축소하면서 물가의 비등과 이왕가의 세비(歲費) 부족을 이유로 고등관 이하 23인을 감원하였다.
창덕궁에는 고종이 생존할 당시 이왕직에는 총 90인의 속이 배속되었는데, 덕수궁에 58명, 창덕궁에 20명 등이었다. 1920년 4월 13일의 『조선총독부 관보(朝鮮總督府 官報)』 제 2,299호를 살펴보면, 황실령 제3호 이왕직관제 개정으로 속이 43인으로 줄어들었음을 알 수 있다. 속의 임무는 서무(庶務) 즉 각종 사무를 담당하는 것인데, 감사도 속의 임무 중 하나였던 것이다. 이왕직에서 창덕궁 각처를 감사하는 것은 조선시대 이래 궁중각처를 내병조와 도총관에서 순시하던 전통을 이은 것이었다.
그 외에도 감사개소에 기재된 장소 들을 통해 일제하의 이왕직이 관리하던 창덕궁 내부의 시설 및 구조를 상당부분 추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순종(純宗)윤비(尹妃)가 거처하던 내전(內殿)을 감사한 일지에는 생과방(生果房), 탕전(湯殿), 세수간(洗手間), 퇴선간(退膳間), 상인급청원인공실(商人及請員人拱室), 석고(石庫) 등의 명칭이 보이며 각각의 위치도 나타난다. 따라서 이 일기를 다른 자료와 함께 활용하면 창덕궁 내전의 구조가 상당부분 해명될 것으로 생각된다.
[자료적 가치]
이 자료는 고종 승하후 인원이 감축된 이왕직에서 창덕궁 관리가 실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자료로서의 가치가 크다. 아울러 이 일기는 일제하의 창덕궁 내부 구조 및 내부 시설들을 확인하는데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문헌
  • 『純宗實錄附錄』
  • 『朝鮮總督府 官報』
  • 『(藏書閣所藏) 王室圖書解題 2, 일제시기』 / 韓國學中央硏究院 國學振興硏究事業推進委員會 編 / 韓國學中央硏究院, 2007
  • 「일제하 李王職과 李王家 족보」 / 신명호 / 『한국학대학원논문집』 11, 1996
  • 「『직원록(職員錄)』을 통해서 본 이왕직(李王職)의 직제(職制) 연구」 / 이지선·야마모토 하나코 / 『동양음악』 26, 2004
  • 「일제하 ‘조선왕실’의 지위와 이왕직의 기능」 / 이윤상 / 『韓國文化』 40, 2007
집필자
1차 집필자 : 신명호, 2차 집필자 : 권석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