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족보
족보의 역사
성씨 관계의 족보는 원래 중국의 육조(六朝)시대에 시작되었는데, 이는 주로 왕실의 계통을 기록하기 위한 것이었다. 중국에서 개인이 족보를 갖게 된 것은 漢나라때 관직을 위한 賢良科를 실시하면서 응시생의 내력과 조상의 업적을 기록하기 시작한 것이 시초라 한다. 특히 北宋의 문장가이었던 소순(蘇洵)·소식(蘇軾)·소철(蘇轍)에 의해서 편찬된 족보는 그 후 모든 족보의 모범이 되었다.
왕실족보(王室族譜)
『선원록』은 식년마다 왕의 친족들을 파악하여 수록한 것으로 왕친을 예우하는 근거가 되는 보첩이다. 『선원록』이 왕실 보첩으로 체제를 갖추게 되는 것은 1412년(태종 12)이다. 태종이 체제를 마련한 『선원록』은 1428년(세종 10)에서 부터는 10년에 한 번씩 중수하고, 매 3년마다 수정되었다. 이때 『선원록』의 수록 대상은 내·외 6대손까지로 한정되었다.
사가족보(私家族譜)
작성한 사람이 자기의 가계를 직계에 한정하여 밝힌 계보로, 이를 가첩(家牒)·가계(家系)·세계(世系)라 하기도 한다. 가승의 기록방식은 선대로부터 자기의 부(父)에 이르는 일직선상의 조상과 그 각 조상의 배우자를 세대별로 기록하고 그들의 전기사항을 밝힌 것이다. 가승(家乘) 중에는 작성자의 고조부터 자손 전부를 기록한 가승도 있다.
특수족보
마을을 단위로 하여 그 마을의 특색을 나타내기 위하여 작성된 보첩을 말한다. 경기도 안산 지역의 옛 지명은 연성(連城)이라고도 하였는데, 일대의 주요 성씨들 계보를 적어 편집한 것이 『연성성보(連城姓譜)』이다. 전라도 여수의 경우는 『여수향보(麗水鄕譜)』가 있고, 경상도 함양군에는 『함양군삼성족보(咸陽郡三姓族譜)』가 있다. 
종합보
본 장서각 소장 『만성보(萬姓譜)』는 19세기에 편찬된 대표적인 종합보의 하나이다. 편자미상(編者未詳)이고, 필사는 고종년간(高宗:1864 - 1895)에 한 것으로 보이며, 책은 불분(分卷) 되지 않은 15책이다.
1책 왕실과 전주이씨, 2·3책 李, 4책 金, 5책 金·朴, 6책 趙, 7책 鄭·閔·吳·兪, ....